(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영국 유학길에 오른 게 벌써 작년의 일이다. 삼십 대 초반에 처음 하는 해외생활인 데다가 불과 세 달 전 결혼을 한 새신랑이 유학을 떠난다니. 많은 축하와 응원을 받았지만, 걱정도 많았다. 특히나 어려운 시절에 유학 생활을 하며 서럽고도 뜨거운 맛을 단단히 보셨던 선생님들은 내 앞에 펼쳐진 고생길을 훤히 내다보시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사회인류학 박사과정의 1년 차도 어느덧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나는 학부에서 신학을, 석사과정에서는 인류학을 전공했다. 학부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석사과정에서는 인간에 대해 배웠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 둘을 합쳐 ‘기독교의 인류학’(Anthropology of Christianity)이라는 ‘종교인류학’의 한 분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비서구 기독교의 부흥 및 후기 식민주의를 배경으로 20세기 말부터 서구 인류학계는 기독교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논의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기독교의 인류학’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졌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회인류학과는 종교 및 기독교 연구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인류학과일 뿐만 아니라 신학부 및 종교학 연구자들과의 학제간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적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나의 연구 주제는 ‘한국 복음주의 선교’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급격한 변화 가운데 선교사의 군상뿐만 아니라 선교 그 자체에 대한 담론 역시 급변 및 다변하고 있다. 주요 선교 국가 중 하나로서 한국은 세계 선교의 변화를 어떻게 매개하고 있으며, 세계 기독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입지(positionality)를 인류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나의 연구 주제이다.
1년 차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내가 이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 속 학문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평생 해외 생활 한번 안 해본 토종 한국인이자 신학까지 전공한 그리스도인인 내가 어쩌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비서구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 안에서 갖는 의미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 기독교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기독교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는 여태 거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변화를 어떻게 매개하며, 어떤 입지를 차지하는지 밝히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둘째, 이전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며 주변화된 것들을 재검토하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사회과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세속적 아카데미아에서 늘 주변인이었던) 무슬림 및 그리스도인 인류학자들이 학계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하나의 방법론적 가능성으로 검토하면서 연구자의 신앙을 금기시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정 종교에 근거한 관점 역시 세속적 관점만큼이나 나름의 고유한 질문과 기여를 통해 인류학적 인간 지식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위기 덕분에, 나는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얕고 피상적인 대답이라면, 나만이 답할 수 있는, 더 깊고 본질적인 하나의 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섬세한 섭리’다. 현재 시점에서 돌아볼 때, 한국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인류학을 공부하기까지 십여 년에 걸친 내 지적 여정 안에 얼마나 많은 우연들과 절묘한 타이밍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던가. 신학대학원 학생이던 20대 중반,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발적이었다. 신학대학원 중퇴 후 인류학 석사과정에 들어간 첫 학기에 때마침, 내 인생 수업이라고 할 만한 강의를 접한 것은 또 어떤가.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을 만난 과정과 논문 주제를 정한 계기 역시 원래 나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석사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기까지의 과정,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중에 의도치 않게 경험한 도움의 손길들. 그리고 극적으로 장학금을 받게 되기까지의 피 말리는 과정들.
예상과 의도대로 되는 게 거의 없었던 내 20대의 모든 순간은 그 무엇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밑거름들이었다. 나보다 더 큰 존재의 섬세한 손길이 아니고서는 나의 지적 여정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불현듯 섭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고는 내 공부 및 삶의 의미와 부르심이 무엇일지 상상해 본다. 내 부르심에 대한 상상 속에 정작 내 자리는 거의 없다. 크신 하나님의 존재가 그 중심을 차지하기에. 이 상상의 끝에 나는 C.S.루이스가 어디선가 말했던 “작은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느끼며 경탄한다.
석사과정 1년 차였던 2019년, <신앙과 삶> 창간호에 실었던 글에서 나는 부르심에 대한 생각이 내 대학원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나누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박사과정 1년 차인 지금, 나는 여전히 섭리와 하나님의 크심, 그리고 부르심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유학 생활의 뜨겁고도 서러운 맛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문화와 언어의 한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열패감과 우울감,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긴장감과 외로움. 이런 감정들은 아마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유해한 감정들보다 ‘섬세한 섭리’가 더 선명한 실재임을 믿는다. 이런 생각이 오늘도 나의 일용할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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