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일전에 교회를 단골로 그리는 작가의 전람회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작가에게 교회 야경을 그리는 배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작가의 대답은 간결했다. “교회 십자가가 도시 경관을 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맞는 소리이긴 했지만 예상을 빗나간 답변에 필자는 순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74%에 달했다. 특히 여론조사 문항에서 눈길을 끈 부분은 한국 교회가 ‘교회 밖 비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항목이었다. 이 질문에는 무려 80%가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답하였는데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제임스 헌터(James Hunter)가 말하였듯이 숫자가 늘 영향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에 따르면 한 나라 인구의 80%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문화적 영향력이 없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형성하는 영역에서 일하지 않을 때나 무관심할 때 그렇다. 기독교에 대한 여론이 추락한 것은 넓혀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활동영역이 협소하거나 문화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리라.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자족하는 것처럼 인식된다면 세상에 대한 역할은 뒤떨어지게 된다.
문화 참여에 대해 말할 때 문화를 대하는 경직성부터 언급하는 것이 차례일 것이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문화를 신앙과 대척점으로 놓기 때문에 문화에 개입하기보다 기피하거나 심지어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고도 문제이다. 종종 그리스도인 예술가가 창작할 때 사전에 답을 정해놓고 하다 보니 안이한 내용 전개와 판에 박은 듯한 결말로 그치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예술품을 전도지 용으로 여기거나 성경책이나 교회와 같은 이미지만을 기독교 예술로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상으로 눈을 돌려 우리의 예술적 재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문화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롭게 할 방안은 무엇일까. 근래 공기관이나 사회기관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예술을 통한 나눔에 힘써오고 있는 ‘아트빈 컴패니언 예술연구소’의 신혜영, 신혜선 작가는 관객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참여자들은 그들만의 사연이 담긴 볼록 판화를 에코백, 보자기, 포장지, 엽서에 찍고 본인의 작업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인터섹트 아트센터’(Intersect Art center)의 경우 목사 남편 밥(Bob)이 목회하는 동안 미술을 전공한 아내 사라 번하드는 교회의 허름한 부속 건물에서 아이들에게 유리 조각 모자이크를 가르쳤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민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나중에는 청소년 멘토링, 무료예술교육, 기술훈련, 금속가공 등으로 다각화하며 지역의 훌륭한 아트센터로 자리잡았다. 지역주민 뿐아니라 지역 예술협회, 지역 단체들도 관심을 보이며 이들을 후원해주었다. 사라와 밥 부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라는 하나님이 주신 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그들 곁을 지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좋은 예가 된다. 사회로부터 호감을 받지 못하는 교회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바로 공공적 역할이다. 일부 교회가 주관하는 강좌, 도서관, 카페, 갤러리 운영, 복지 프로그램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교회의 마을 돌봄은 공동체가 무너진 지역주민들을 연결해주고 신뢰감을 제고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된다. 정재영 교수가 제안한, 이웃들의 삶에 필요를 채우는 ‘마을 만들기’(Community Building)는 교회와 지역사회의 긴밀한 연계의 측면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중요한 일이다. 신앙인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지역의 이웃들과 접촉하고 긴요한 것을 보급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이란 점에서 마땅한 것이며 신앙의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어느 때보다 기독교의 신뢰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올해에는 제4차 로잔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개인적으로는 로잔 서울대회를 계기로 복음화 운동과 함께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현실적 실천에서도 큰 걸음을 내딛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여기에 예술을 통한 나눔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들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이 지역민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없으면 안 될 친근한 ‘벗’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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