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하는 공부, 내가 하는 일. 하나님은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계실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알게 모르게 하나님 나라에 영향을 주고, 우리가 현실 세계에 참여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선한 뜻을 성취한다는 가르침을 어렵지 않게 접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연구, 배움, 근로, 사회적 관계 등은 단순히 그것 자체로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의 가능성을 가진 ‘중요한 일’이 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국 교육은 현재 이 시점, 가치와 철학, 목적 의식이 부재한 채 무조건적 열심으로 둔갑한 성공주의 교육에 대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 같다.
2022년 기준,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길고, 그리고 경제 성장으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 그러한 열심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사람들은 배움, 봉사, 일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듯하다. 2021년 ‘Pew research center’에서 진행한 조사연구에서는 세계 선진국 17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은 독보적이고 유일하게 ‘물질적 부요함’(material well-being)을 최우선시하는 나라로 나타났으며, 다른 국가에 비해 종교/영성(1%), 배움(1%), 사회적 관계(3%), 일(6%)과 같은 영역에서는 극소수만이 의미를 찾는다고 답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유사하게, 청소년과 청년들은 이미 직업 선택에 있어, ‘수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하는 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물질이 재화로서 갖는 수단적 가치보다는 그것 자체를 추구하기에 급박한 세대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서다. 자아 성장, 신앙적 가르침 등 삶에서 보다 더 본질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영역이 개인의 가치 체계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물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머지를 희생하게 되는 것이 서서히 합리화, 정당화, 정상화되는 사회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열심을 강요받는 아동·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의 학업 흥미와 삶의 만족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학업성취는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대조적으로 낮은 삶의 의욕을 보이는 데에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걸까. 이들에게 어떻게 ‘보다 더 나은 삶’, ‘가치 있는 삶’을 개척하고 발견하며, 추구하라고 독려할 수 있을까.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성교(결합) 후에 우울하다.
그리스의 의학자였던 갈레노스가 한 말로,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여 어떤 목적을 이루고 난 후에 우리는 그 이상의 의미를 놓쳤음에 허무하고 더 큰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한동일 작가는 그의 책, ‘라틴어 수업’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회적 지위, 물질적 풍요 등을 손에 쥐게 되더라도 영적인 동물이자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그 성취 자체가 궁극적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획 가운데 빚어지고 창조된 우리가 너나 할 것 없이 획일적으로 물질적 풍요만을 위해 달릴 때, 그 사회는 다양한 모습과 고유한 달란트로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습에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 학생들은 열심의 삶을 너머, 나 개인에게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추상적이지만 궁극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추상적 사고는 발달심리적 관점에서 초기 청소년 시기부터 충분히 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어떠한 행위가 정당한가?”, “이런 결정을 했을 때 어떤 가치가 실현되는 것인가?”, “이로부터 이득을 받는 집단과 피해를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이것을 성경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자신만의 답을 구성해 나가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웃’의 존재가 나의 행위, 삶의 결정, 학업이나 일에 대한 이유에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깨닫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한 ‘잘 사는 삶’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영혼없이 좇으며 열심히 사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나에 대한 탐색과 공부가 수반되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폭넓게 경험해보는 교육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야기’를 활용하여, ‘다양한 타인’과 접속하며 공감과 존중을 터득하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유사하거나 다른 계층, 배경, 모습의 사람들의 형편, 입장, 목소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쌓인 타인에 대한 지식은 폭넓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자유와 여지를 제공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우수하지만 주도적이지 않은 학생, 열심의 모습만 있고 자족의 능력은 없는 학생, 성취는 잘하나 성찰은 없는 학생이 아닌,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을 살아내는 학생들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늘 유연하게 변화할 준비를 하며,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분별하는 세대 말이다. (※ 필자의 의견은 소속 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지난 5월 18일(토)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홀에서 개최된 ‘2024년 기독교학문연구회 춘계학술대회’(주제 : ‘기독교 세계관 연구 40년과 위기의 시대)의 주제강연(소장학자)의 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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