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세계복음화는 우리 세대에 우리의 손으로!’라는 주제로 제5회 ‘선교한국대회’가 1996년 8월 5일(월)~10일(토)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선교한국대회’ 역사상 최대 인원인 6,300여 명의 대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했던 그 은혜의 현장에 필자는 일대일과 소그룹으로 양육하는 연세대 제자훈련모임(DTP) 지체들과 신학과 후배들 10여 명과 함께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
“선교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선교 헌신이 아니다”라는 설교자의 도전 앞에 “주님, 저의 선교지는 어디입니까?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간구하던 밤에 주님께서는 3년 전에 군에서 꾸었던 꿈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북한 땅에 가라시면 기꺼이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눈물로 결단을 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전역한 후 복음의 열정으로 후배들과 함께 매일 아침 8시 신과대학 기도실에 모여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 모임’을 하며, 매주 금요일 12시 학생회관 앞에서 말씀 선포와 찬양으로 노방전도를 하며 캠퍼스 선교를 이어왔기에, ‘선교한국대회’ 직후에는 더욱 강렬한 선교적 열정을 품고 캠퍼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연세대학교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교한국대회’ 직후인 1996년 8월 13일(화)부터 20일(화)까지 연세대학교에서 ‘범민족대회’를 주최한 2만여 명의 ‘한총련’ 학생 중 5,848명의 학생이 연행되고 462명이 구속되는 연세대학교 ‘한총련’ 사태가 벌어졌다. 5만여 명의 전경과 경찰 특수기동대, 그리고 12대의 헬기까지 동원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강력한 진압 작전을 통해 연세대학교 종합관은 거의 전소되었고 화학물질이 가득한 이과대학 실험실의 폭발 위험까지 감수하며 진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 전경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명을 했으며 890여 명의 전경 부상자가 발생했다.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일주일간 벌어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한총련’ 사태는 같은 또래인 20대 대학생과 전경 간의 참혹한 사투였고, 최루탄 가스와 쇠 파이프, 화염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현장이었다.
당시 나는 캠퍼스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연세대학교 출입 자체가 봉쇄된 상황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폭력적 시위와 진압의 폭풍이 지나간 처참한 교정을 목격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 학생들과 불에 타버린 종합관의 잔재와 쓰레기를 치우며 청소하기 시작했다. 화재의 잔재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청소하는 일밖에 없을까?’라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그해 11월 제자훈련모임(DTP)으로 캠퍼스 선교에 헌신해온 ‘신실한’ 지체들이 모여 비운동권으로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했다. 지금은 모두가 목회자가 되어 있는 법학과 한동수 형제와 신학과 유명종 형제가 연세대학교 제34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였고, 박경원, 정모세 형제와 함께 선거팀을 꾸려 4팀의 후보가 나왔음에도 전 단과대학 과반의 압승으로 당선되었다.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연세대 ‘한총련’ 사태 이후 총학생회에서 편집정책국을 담당하면서, 사회 개혁을 부르짖는 운동권 학생회의 구조적 경직성과 재정적 불투명, 그리고 계파에 치우친 편협성 등을 목격하며 학생운동 영역이야말로 개혁이 대상이 되어버렸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한편, 밤새워 대자보를 쓰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 투쟁!”을 외치고는 신문지를 깔고 학생회관 통로에서 잠을 청하는 운동권 여학생들의 엄청난 헌신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진리와 생명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 청년들이야말로 이러한 영역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는 아닌가?”라는 고민을 깊이 하게 되었다. ‘비운동권’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여전히 단과대학 대부분은 기존의 운동권 학생회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여러 정책토론과 공청회에서 ‘NL 계열’과 ‘PD 계열’의 운동권 학생들이 내세우는 대안적 사회의 ‘거대 담론’ 앞에서, ‘기독총학생회’의 정체성을 내세운 ‘비운동권’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대안적 담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가 없었다. 모태신앙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의 신앙훈련을 열심히 해 오며 성경을 읽어왔고, 대학에서도 신학적 교육은 물론, 전도와 양육 등 철저한 제자훈련을 하며 선교적 삶을 살아왔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에 근거한 기존 운동권 학생의 대안을 뛰어넘는 기독교적 대안 사회를 근원적으로 제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총련’ 사태를 비롯한 운동권 학생의 폭력적 대응 방식과 구조적 경직성 등의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뛰어넘는 기독교적 대안 사상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훈련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외쳐온 희년 사상을 이풍 박사님과 박창수 형제를 만나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교회사 연구를 통해 희년 사상을 꾸준히 연구해 오며 기독교 세계관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학교회를 중심으로 캠퍼스 사역을 하고 계신 목회자 모임을 통해 석종준 목사님을 만나 뵙고 교제하는 가운데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만나게 되었고, 2018년 5월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기독교학문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의 대응’이라는 주제강연의 논찬을 맡아 귀한 동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20년 1월에는 삼일교회에서 열린 제3회 기독교세계관학교에서 ‘희년과 부채탕감’을 주제로 한 강연, 그리고 2023년 11월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40회 기독교학문연구회 연차학술대회에서 ‘공동선을 향한 청년 사역’을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하면서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신앙과 삶>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다양한 현안 분석과 대안 제시를 매월 접할 수 있어서 큰 감사를 드린다. 대학 강의와 목회를 통해 희년 사상과 기독교 세계관을 진지하게 숙고하는 대학․청년들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며 고민한다.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그냥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대학․청년들에게 <신앙과 삶>은 큰 버팀목과 방향 제시가 되기에 계속해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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