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교회력에서는 고난주간의 목요일을 ‘성 목요일’이라 해서 주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날로 기념한다. 첫 번째 성 목요일은 아마도 예루살렘에 어느 평범한 가정집에서, 무미건조한 식사용 빵과 물 탄 포도주를 나누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성만찬에는 장엄한 전례도, 신성한 성변화(화체설)의 신학도 없었다. 맨날 먹던 빵과 포도주, 그리고 매일 보던 예수와 제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그곳에는 아직 그리스도인도 없었다. 다만, ‘배신’과 ‘죽음’이라는 우리 세상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비극적인 소식이 공개되었다.
흥미롭게도, 최후의 만찬이자 최초의 성찬에는 배신의 두 주역이 모두 자리했다. 배신당할 예수와 그를 배신할 가룟 유다가 같이 있었다. 유다가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유다는 성찬의 환대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함께 먹으며 마셨다.
사실, 배신자는 유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작은 유다가 했으나, 예수의 말씀대로 열두 제자 모두가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다. 교회가 놓일 ‘바위(petros)’, 시몬 베드로는 사람들이 추궁하자 주님을 세 번 부인하며 자기 스승을 저주했다. 나머지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이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배신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예수가 잡히던 밤에, 스승이요 주님이신 그는 홀로 남겨졌다.
놀라운 점은, 복음서의 예수가 이를 예견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는 곧 배신당할 미래에도 불구하고, 열두 제자들을 만찬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예수를 팔 유다였고, 예수를 저주할 베드로였으며, 흩어져 도망칠 열 명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예수의 환대에서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초로 주님의 성체와 보혈을 맛보는 은혜를 받았다.
우리는 같은 빵을 떼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한솥밥을 먹는 사이’이다.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 전에 고백하듯이,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 빵을 나누며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2천 년 전 어느 목요일, 예수와 열두 배신자들이 같은 빵을 나눠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무교절 식사 후 일어난 일을 생각한다면, 가룟 유다는 물론 열두 제자 중 단 한 명도 거룩한 식탁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다. 준비가 덜 됐다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고, 예수의 메시아 됨을 알면서도 배신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임금을 배신해도 끔찍한 형벌이 내려졌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배신한 죄는 얼마나 클까.
그러나 다시 밝히지만, 예수는 제자들의 위선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주저 없이 배신자들을 환대하고 함께 식구가 되었다. 우화적으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신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배신하는 역사가 반복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도라고 자처하는 우리도 열두 제자와 다르지 않다.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예수는 자신을 곧 배신할 열두 제자를 한 명도 빠짐없이 거룩한 식탁에 초대했다. 여기에 제자들의 믿음이나 생각 따위는 상관없었다. 오로지 예수의 무조건적 환대가 자신들은 선하고 정당하다고 착각하던 열두 죄인을 풍성한 생명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어떤 교인들은 특정한 교리를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자기 주관에 따라 형제자매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교리’는 사람마다 다르며, 그것이 배척의 근거로 쓰인다면 심지어 자신마저도 누군가에게 ‘불신자’로 배척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성만찬의 식탁은 모든 이를 환대한다. 성찬의 주인이자 제정자이신 그리스도가, 열두 죄인을 포함하여 모든 죄인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이 환대는 지나가는 손님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 죄인들을 부르는 것이다. 평범한 빵과 평범한 포도주로부터, 제각기 다양한 죄인들이 주님의 식구가 되는 신비한 기적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닫힌 명제들을 믿기 때문에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서가 기록하듯,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두기에 부족할” 정도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그리하여 성도는 그리스도가 참으로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 일하신다고 비로소 고백할 수 있다. 열두 죄인을 식구로 삼으셨으며, 지금도 모든 죄인을 차별 없이 부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따르길 소망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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