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복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약학자의 팔복 읽기
<팔복, 예수님의 세계관> / 전성민 / 성서유니온 / 2023
구약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팔복을 새롭게 펼쳐 보인다. “복 있습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으로 시작하는 새한글성경 번역을 사용하고, 원어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도 팔복을 예수님이 바라본 평화의 세계관으로 읽는 관점이 새롭다.
이 책은 저자의 ‘세계관 3부작’의 하나로 읽어야 한다. <세계관적 성경읽기>(성서유니온, 2021)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의 자리와 방향을 다섯 가지로 제안하고 있다. (1) 지성뿐 아니라 욕망을 다루는 제자도, (2) 중심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경계를 넘는 용기, (3) 그 경계를 넘었을 때 만나는 타자를 두려움 속에 혐오하지 않고 환대하는 복음, (4) 다름을 대결의 이유로 삼지 않고 대화의 기회로 삼는 세계관, (5)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지니고 계신 번영과 평화의 비전을 이루는 소명. 이 다섯 가지 자리와 방향은 근대의 기독교 세계관 담론에 의도치 않게 끼어든 대립과 대결의 구도를 뛰어넘어 탈근대, 다문화의 상황과 대화하려는 저자의 오랜 모색의 산물이다.
저자의 생각을 따르자면, 팔복은 예수님이 바라본 평화로운 세계이며 번영하는 인류에 대한 그림이다. 이런 생각은 팔복을 규범적으로 읽어온 독법을 물리치고 예수님이 바라본 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복됩니다!”라고 외치는 것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중략)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으라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라는 선언을 받아들이라고, 사고방식과 세계관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48쪽)
이 책은 예수님을 따라 평화, 즉 샬롬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도록 요청한다. 평화의 세계관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즉 영적으로 파산한 사람을 복되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종교적 삶에서조차 우열을 나누고 높은 자리에 서고자 하는 종교적 우생학에 대한 반란이다. 또 평화의 세계관은 온유한 사람, 즉 하나님 외에는 대책이 없는 사람을 복되다고 선언한다. 예수님이 온유한 방식으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일상에서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평화의 세계관에서 복된 사람은 지금까지와 다른 갈망, 즉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 정의를 추구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약의 창조에서부터 신약의 십자가 화해에 이르는 성서의 장엄한 비전에 비추어 팔복을 읽어낸다.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신학적 사유가 드러난 곳은 ‘온유의 십자가, 하나님의 사과’일 것이다. 이 사유의 출발점은 “가나안 전쟁의 살육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물음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민춘살롱>의 구독자가 이 물음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이 사과라도 한다면 이 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유감 표명, 그리고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사유로 나아간다. 이는 구약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신약적 답이라는 점에서 구약학자의 팔복 읽기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사유일 것이다.
이 책은 김교신 선생의 <산상수훈 연구>의 주요 문장을 각 장의 발문으로 인용해 놓고 있어 <산상수훈 연구>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힌다. 이 책의 9장 ‘신앙의 이유’에서 저자는 김교신 선생의 글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다.
“축복은 행복보다 더 높은 것이다. 행복은 외계로서 오는 바 경우의 영향을 받는 것이고, 축복은 환경이 지배할 수 없는 영혼 속에서 용출하는 내적 환희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축복은 하나님과의 정당한 관계에 서서 사람 된 자의 진정한 도를 걷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240쪽에서 재인용)
저자에 따르면 팔복은 뒤집힌 복이다. 정의를 추구하다 박해를 받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으니 기뻐할 일이라고 했지만, 가능할까? 김교신 선생은 식민지인으로서 15년 동안 자비를 들여 <성서조선>을 간행하였다. 그 일로 매달 총독부의 검열을 받는 모욕을 견뎌야 했고, 선의를 가장하여 폐간을 종용하는 이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원고가 삭제되고 나중에는 황국신민 서사를 수록해야 했으며 ‘<성서조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까지 했다. 식민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살았고 정의를 추구하다 박해를 당하고 죽기까지 했으니 ‘신앙의 이유’를 이보다 더 잘 말할 이는 없으리라.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예수님의 세계관으로 볼 때 이보다 더 복된 삶은 없으리라.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입니다, 여러분은,
복입니다, 서로에게 우리는.” (267쪽)
이 책은 팔복, 즉 예수님이 바라본 평화의 세계로의 따뜻한 초청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어느새 예수님이 갈릴리 어느 언덕에서 바라보았던 평화와 번영의 세계 안에 들어와 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평화와 정의를 경험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경계를 넘어 대화하고 낯선 이를 환대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복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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