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은 현대 기술 문명을 비판한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개신교 신학자로서, 레지스탕스 활동, 환경보호 운동, 청소년 범죄예방 활동 등에 참여하여 치열하게 투쟁한 그리스도인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엘륄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엘륄의 사상과 관련된 학회와 심포지엄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다. 이처럼 엘륄이 프랑스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현시대에 심각하게 떠오르는 여러 위기 및 재난과 관련되어 있다. 전 세계적 금융위기 같은 사회적 위기, 통제되지 않는 개발에 의한 열대 우림 소멸과 생물 다양성 붕괴 같은 환경 파괴, 환경오염과 물 부족 같은 인간을 위협하는 전 세계적 환경 재난,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온난화와 이상 기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같은 핵 재난, 유전자변형 식품과 광우병, 동물 복제로부터 시작된 인간 복제의 가능성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에너지 자원 고갈, 석면 공해, 핵폐기물 처리, 사고 위험 공장, 인체에 유해한 전파기지국, 알레르기의 급증, 대유행 전염병 같은 많은 위기와 위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위기와 재난에 직면하여 해결책이 무엇인지 찾아보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드문 실정이다. 그런데,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엘륄의 사상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엘륄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상가보다 현시대를 더 명확히 밝혀준다고 평가된다. 엘륄의 사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며 파악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숨겨진 논리를 폭로한다는 것이다. 엘륄은 이런 위기와 재난을 예견하고 근본 원인으로서 ‘기술’을 들면서, 현대 기술의 두 가지 특성을 지적한다. 하나는 기술의 ‘단일성’ 혹은 기술의 ‘양면성’이다. 이는 기술의 긍정적 사용만을 위해 기술의 긍정적 사용과 부정적 사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의 ‘자가 증식’ 혹은 기술의 ‘자율성’이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개입 없이도 발전하고 자가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율적인 과정이 되고 신격화된 권세가 된다. 나아가, 컴퓨터에 힘입어 기술은 ‘체계’가 되고 정보처리기술을 통해 모든 기술이 망으로 연결됨으로써, 고장이나 혹은 재앙이 어떤 영역에 영향을 미치면 ‘체계’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현대 기술 사회는 여태껏 존재한 가장 강한 사회인 동시에 가장 취약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어느 때보다 온갖 형태의 불행이 지구 전체에 밀려들었다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즉, 참혹한 기아, 극심한 빈부 격차,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의 완전한 예속이 구조화되고 있다. 아울러, 잔인한 독재와 극심한 고문, 저항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 억압과 착취, 광적인 폭력과 살육, 참혹한 전쟁과 테러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진다. 특히, 국가 권력의 지속적 증대 및 기술의 독자적 발전이 세계 문명에서 결정적인 힘과 가치가 된다. 이 때문에, 현시대의 전 세계적 재난과 위기는 우연이나 불운의 산물이 아니라, 문명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산물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엘륄은 현대 기술 사회에서의 새로운 혁명으로서 ‘필요한 혁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하면서 혁명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이 혁명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해관계를 떠난 제3세계에 대한 원조, 힘이 있어도 힘을 쓰지 않는 비무력(非武力)의 자발적인 선택, 모든 영역에서의 분산과 다양화,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 임금제도의 폐지 등이다. 따라서 이 혁명은 인간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현대 기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며, 이 혁명을 통해 기술이 인간에게 종속될 수 있는 동시에, 체계로서의 기술이 파괴될 수 있다. 하지만 엘륄은 마이크로컴퓨터 정보처리기술이 기술 체계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이 혁명을 실행할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이제 자신에게 이 혁명이 명백한 신앙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복음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혁명적이며 ‘영원한 혁명’을 요구하기에, 이런 혁명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혁명적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제도나 혹은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그칠 수 없고, 사회의 거짓 신과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토대로 하기에, 세상의 고삐 풀린 기술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따라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된다면, 우상처럼 군림하는 기술의 신성함을 숭배하지 않고 기술의 신성함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소망을 증언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가 확립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인을 기술의 지배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특별한 결단을 통해 지속적이고 진정한 혁명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진정한 혁명이란 어떤 사회와 문화의 본질적인 토대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근본적인 혁명을 말한다. 엘륄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 순응하는 삶과 태도를 비판하면서 거기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인다. 결국, 엘륄의 삶과 투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엘륄의 사상은 오늘날의 위기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의 혁명적 역할을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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