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프랑스의 종합적인 저출산 대책의 비결
: 이상민, 박동열의 <저출산, 프랑스는 어떻게 극복했>(고북이, 2024)를 읽고
우리나라 100명의 부모(50가정)에게서 아이가 35명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30년 후 다음 세대에서는 13명만 태어나게 될 것이다. 개인의 소멸, 가정의 소멸, 지역 사회의 소멸, 국가의 소멸 위기가 가시화된 지 오래다. 저출산 대책 방향과 추진체계 수립을 위해 2006년 1월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시행했다. 이후 17년 동안 무려 300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위기 국면은 심화되고 있다. 올 7월 정부는 부총리급의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 안보의 위협만큼이나 중대한 정책현안이지만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고 개인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에 동조만 하는 실정이다.
일본과 서유럽 국가들이 앞서 경험했고 심지어는 가장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펼쳤던 중국도 2015년 두 자녀 정책을 발표했다. 각국의 저출산 대책은 국내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경제적 요인들과 교육제도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정책 선택에 구조적 어려움이 있고 정책 효과를 예측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종합적인 가족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여 1995-2010년 합계출산율 증가세를 이뤄냈고 이후 감소세로 반전되었으나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들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다차원적인 저출산 대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올 6월 유익한 학습서가 출간되었다. <저출산, 프랑스는 어떻게 극복했나>(2024, 고북이)이다. 부제가 “삶의 질을 위한 인구정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주제는 사회과학자가 집필했을 것 같은데, 두 저자(이상민, 박동열)는 프랑스어 교육을 전공한 언어교육학자이다. 저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활용했다. 학술 자료에 국한되지 않고 시의성 있게 서술하고자 국내외 언론자료, 정책 보도자료, 대사관 자료, 프랑스 교육기관 자료 등을 망라했다. 제1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책을 진단하고 사회적, 경제적 위기임을 피력했다. 제2부에서는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정책이 가족, 보육과 교육, 주택, 사회연대, 이민, 지역 균형발전 등의 정책들과 융복합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역설했다. 제3부는 120여 쪽을 할애하여 포괄적인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
이 역작을 통해, 프랑스의 저출산 대책에서 주목할 부분으로 관점과 접근방식과 정책추진 내용이 보인다. 먼저 프랑스는 저출산 이슈를 가족정책의 관점에서 대응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출산율 회복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과 생활, 보육 및 주거환경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출산과 보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프랑스는 서둘러야 할 저출산 대책을 느긋하게(?) 보일 사회문화와 교육제도와 연계하여 시행한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사회연대의 가치로 저출산 대책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개인의 출생과 성장을 교육의 공공성으로 일관되게 뒷받침한다.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서비스를 무상으로 심지어는 추가 지원금(장학금)으로 제공하지만, 영유아 보육 비용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과한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주택은 공공과 민간 부문이 공급과 운영관리를 절반으로 분담하여 관리한다.
이 책은 프랑스의 복잡한 사회, 가족복지, 교육, 주택 및 경제 체계와 제도를 매우 수월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라는 나라와 이 나라의 포괄적 저출산 대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 저자들이 사회과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탐구력과 설명력이 매끄러운 문장으로 서술된 점도 독서의 유익을 더해줄 것이다. 저자들도 공지하였듯이 프랑스의 가족정책을 그대로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관점, 접근방식과 추진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응용하기에는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저자들이 방대한 자료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해석해 낸 열정과 도전적인 노력에 비해 원문 내용과 저자들의 분석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았다. 출처표시가 소제목에 포괄적으로 제시된 점은 후속 연구를 위한 안내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마지막 절에서 보론처럼 제기한 “탈성장 사회” 논의는 비록 저자들의 독창적인 제안은 아니지만,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으로 성숙(?)해지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탈성장의 취지가 보완적일 수는 있지만,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돌이킬 수 없는 글로벌 경쟁구조가 야심적인 “탈성장 사회”를 구조적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탈성장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7가지 대안 가운데 ‘근거리 경제 구축’이나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현재의 이행방식을 강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품 수명 연장, 광고 축소, 불필요한 산업 축소, 최고 임금 정책 등을 자유 시장경제 기반의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심층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프랑스가 저출산 위기에서 탈출한 것은 아니다. 종합적인 가족정책을 완성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꼴찌라고 해서 그동안 예산만 지출하고 뒷짐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 가족, 지역사회와 국가의 생존 가치를 위해 더욱 실효성 있는 지혜로운 방안을 시행하지 못한 결과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사례 탐구는 우리의 도전 의지를 새롭게 촉발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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