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9세기 네덜란드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판 프린스터러(Groen van Prinsterer, 1801-1876)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에게 큰 영향을 준 그리스도인이다. 특별히 그는 개신교 정통주의 신앙인으로서 프랑스 혁명의 반신앙적 성격을 주목하면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반혁명당 창당에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판 프린스터러의 사상을 다루는 것은 초기 네덜란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신앙과 삶>은 ‘온전한 지성’ 지면을 통해 3회에 걸쳐 간략히 나누고자 한다.]
판 프린스터러의 사상과 삶을 이끈 힘은 칼뱅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 신앙이었다. 신실한 신앙인으로 칼뱅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아내 벳지 반 더 후프가 자기 남편을 칼뱅주의로 이끈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전기 작가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를 칼뱅주의로 이끈 중요한 동인 역시 시골에서 살던 몇몇 평범한 칼뱅주의자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평범하지만 신실한 신앙적 삶의 힘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이 신앙에 의해서 판 프린스터러는 하나님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것을 이루는 섭리가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는 이 섭리의 손길을 자기 조국 네덜란드에서 발견했다. 지금의 베네룩스 3국인 저지대 지역에 루터의 가르침과 칼뱅의 개혁 신앙이 전파될 때에 그들은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었다. 개혁 신앙을 접한 국민은 종교의 자유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오렌지의 윌리엄’(William of Orange) 영도 아래 독립을 쟁취하였다. 판 프린스터러는 이 역사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였다. 곧 네덜란드의 출발이 칼뱅주의 신앙이었으며, 따라서 그 사회가 칼뱅주의 사상 위에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신앙 체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함께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앙은 도덕적 선이라는 열매를 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상과 삶은 도덕적 타락을 초래한다. 판 프린스터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세력을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을 휩쓸던 혁명 정신과 그로 인한 혼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유럽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계몽주의 역시 그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네덜란드를 개혁 신앙에 근거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판 프린스터러는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배후에 있는 ‘반신국적’ 원리를 ‘혁명’이라 부르면서 그 대안으로 정통 기독교 신앙과 성경적 사상에 근거한 새로운 원리를 네덜란드 사회 전체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 원리는 세계관으로 정리되어 가르쳐져야 했다.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맡겨진 세상과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특별히 교육 등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계발하고 적용하고 가르쳐야 했다.
공교육이 첨예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17세기까지 네덜란드의 초등 공교육은 대체적으로 개혁주의적이었다. 하지만 계몽의 정신과 혁명의 기운과 함께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고 초등 교육은 오로지 국가의 몫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초등 교육은 혁명 정신에 지배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판 프린스터러는 교육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교육의 자유란 부모가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 자녀의 종교와 도덕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스스로 교육기관을 세우거나 선택하여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어야 했다. 동시에 정부는 자원의 배분에 있어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차별해서는 안 되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좋은 것이 ‘영역주권론’이었다. 인간 사회는 가정, 교육, 예술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통치자로서 그 각각의 영역을 위한 법칙을 내리셨다. 이 법칙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사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는 길이다. 어느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국가가 그 모든 영역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 원리는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국가가 반혁명적인 신자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근거가 되었다. 특별히 공교육을 국가가 장악한 후에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막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교육을 국가가 장악하여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혁명의 기운이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고 각 나라는 무신론적이고 세속적인 원리로 국민의 삶 전체를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영역 주권 사상은 이 흐름에 대항하는 유력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서 꽃 핀 이 사상은 판 프린스터러에게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판 프린스터러는 역사학자로, 정치가로, 저술가로 이 이념을 위해 싸웠다. 그 30년간의 싸움을 “병사가 없는 장군의 싸움”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그 싸움을 이어받은 아브라함 카이퍼는 비상한 재능과 집중력으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켜 네덜란드 사회에 적용하였다. 장군은 병사가 없어도 싸울 만한 싸움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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