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981년,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온 세계가 놀랄 만한 규모와 속도로 발전하고 정치는 급속도로 민주화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 물질 만능의 풍조는 우리 사회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고, 모든 기릴 만한 전통적 가치는 급진적 이념들의 어지러운 도전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 무렵 학문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에는 오직 운동권의 서사가 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추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불편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신앙과 학문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할 수 없었던 몇몇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고민을 나눌 모임들을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믿음이 가진 색깔과 동기를 따라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과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이하 ‘동역회’)라는 두 단체를 설립하여 그 모임을 이어가다, 2010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기세동’)라는 이름으로 연합한다.
이렇게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온 이 땅의 기독교 학문 운동의 역사는 한 단체를 이루어 연합한 2010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합 이전 30년의 기간은 각자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다양화’의 시기였다면 연합 이후 15년은 ‘통섭’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라 부를 수 있겠다.
1981년에서 2010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통해 두 단체는 구성원 각자의 색깔을 더욱 밝게 드러내는 ‘다양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기에 <신앙과 학문> 그리고 <통합연구>라는 학술지를 펴내고, 두 학술지 모두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되도록 한 것은 두 단체가 이룩한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또한 두 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여러 기독교 학술 단체가 설립되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 경제·경영학자들의 모임, 그리스도인 교육학자들의 모임, 그리스도인 철학자들의 모임 그리고 그리스도인 법학자들과 예술가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기학연’과 ‘동역회’ 지체들은 이런 여러 학문 분야별 그리스도인 학자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학술대회와 학술지를 펴내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기간에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일은 그리스도인 학자들의 활동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기억할만한 학문적 성과들을 일반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폭넓게 나누려 했던 부분이다.
‘동역회’는 1989년 기독교 출판사 CUP를 만들어 국내외 기독교 학문의 성과를 담은 출판물을 펴내어 널리 읽히게 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또한 ‘기학연’은 <새로운 지성>으로 시작하여 <온전한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소식지를 정기적으로 펴내 그리스도인 학자들의 목소리를 한국 교회 공동체에 널리 나누고자 하였으며, 지금은 독립된 기독교 월간지 <월드뷰>가 만들어지는 일에도 기여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2019년에 ‘기세동’의 기관지 <신앙과 삶>을 펴내는 일로 이어졌다.
2010년 두 단체의 연합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은 ‘통섭’을 시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무렵 각 분야에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 학자들이 세워졌으며, 이들은 우리가 처한 다양한 난제들에 기독교 학문의 입장을 펼쳐 낼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연례 학회의 주제만 보아도 이러한 변화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생태, 환경, 건강’, ‘뉴노멀’, ‘메타버스’, ‘양극화’, ‘공공선’ 그리고 ‘ChatGPT’에 이르기까지, ‘기세동’ 학술대회의 주제는 더 이상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의 가장 중요한 의제들이 곧 기독교 학술 활동의 의제가 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그리스도인 학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어 널리 통섭하는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 보면 통섭은 학문의 궁극적 회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효율’을 위한 ‘전문화’라는 미명 아래 모든 학문은 ‘파편화’의 길을 걸었다. 그것이 이 시대 학문이 가진 ‘타락’의 한 양상이다. 각자 나름의 전문성을 가진 학자로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벗어난 무언가를 자신과 다른 분야의 학자와 논하는 것은 편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1981년 한국의 상황은 학문의 길을 걷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길을 찾는 목마름을 주었고 그 목마름으로 ‘통섭’을 향한 이 땅의 기독교 학문 운동은 시작되었다. 공학자가 신학과 철학을 읽고 과학자가 경제학과 미래학을 읽으며 길을 물었다. 여러 전문영역을 넘나들어야 하는 불편함과의 씨름, 이것이 지난 반세기 기독교 학문 운동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풍요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풍요는 1981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자유와 정의 따위는 이제는 더는 문제가 아닌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우리의 꿈이 너무 작아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C. S. 루이스는 우리의 욕망이 너무 커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작은 것이 문제라 했다. 학자의 꿈이 논문 편수와 연구비 액수에만 머무르고 있다면 너무 작은 것이다. 그리스도인 학자라면 더 큰 꿈을 가져야 한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 곧 세상의 난제와 씨름할 수 있는 통찰을 이 땅의 그리스도인 학자들 모두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주께 구하는 바램을 품어본다. 그리하여 이 시대 중심에 놓인 의제들을 해결하는 통섭의 학문을 이 땅의 그리스도인 학자들이 이루어 내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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