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주제와 함께 40년을 지내온 적지 않은 시간을 되돌려 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의 경우 1987년 석사과정 입학부터 시작된 일이니 한 37년 정도 되는데, 확실한 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그 세월을 관통하는 분명한 하나의 줄거리였음은 틀림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교회 사역에 열심인 것, 자녀들을 잘 양육하는 것, 전도와 선교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 직장 신우회를 잘 섬기는 것 등이 있겠고 또한 신앙과 학문의 연구나 저술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나의 경우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그것에 맞게 현장에서 살고자 했던 것이 핵심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겠다.
37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니 요즘 말로 감성이 크게 달라졌음도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해병대를 제대하고서 세상에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부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준비하였고 카이스트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홍릉 캠퍼스에는 과학원 교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교회라고는 하지만 예배당이나 담임목사가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고 학생들이 교수 아파트 옆 동의 보일러실 같은 공간을 얻어서 목사님 또는 전도사님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는 식이었다. 예배당이 아니다 보니 좌석은 없었고 그냥 바닥에 둘러앉아 통기타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찬양을 따라 찬양하고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이 되면 남양만의 두레마을로 노동 및 수련회로 다녀오곤 했는데, 거기서도 널찍한 방에 빙 둘러앉아 특강도 듣고, 끝날 것 같지 않은 토론도 이어지곤 하였다.
나중에는 우리 모임에 전임 사역자로서 목사님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방 수련회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전도로 선교로 시골 교회를 돌곤 했는데,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큰 방에 둘러앉아 각종 모임을 하곤 하였다. 방에서 둘러앉은 모임은 모든 사람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으며 표정 하나하나도 읽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때의 감성은 말 그대로 ‘페이스 투 페이스’ 아니었던가 싶다. 다만 자매들은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지금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때는 그런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누가 말을 하게 되면 좋든 싫든 들어주어야 하고 도중에 자리를 뜬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내가 말을 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몇 배가 더 많게 된다. 지금도 그때의 생각이 가끔 나곤 하는 것을 보면 그때의 감성이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떤가? 얼굴을 맞대고 돌아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성은 사라졌고 지금은 SNS가 그것을 대체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로 변화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디지털 방식은 선별적이고 시간의 분배가 가능하고 효율적인 면이 많지만, 아무래도 방바닥 모임에서 느꼈던 공감과 소통과 경청의 감성은 느낄 수가 없다. 기독교 세계관도 어떤 면에서는 기술접목 지향적인 한국문화에서 일면 디지털화와 같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렇다면 방바닥 모임과 같은 풍성한 감성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주로 공부하는 모임이다 보니 주제에 대한 충실도는 높으나 예수의 제자도와 같이 동고동락하며 생활공동체적인 면모는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사방에 십자가가 보였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사뭇 다르다. 지금은 커피숍이 정말 많아졌다. 특히 내가 사는 대전지역은 상대적으로 더욱 많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별다방이 다섯 개나 된다. 그 많은 커피숍도 주말에 가보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커피숍도 좋은 대화의 장소이다. 이제는 대부분 교회도 커피숍을 가지고 있어서 교인들이 모임을 하곤 한다. 나는 커피숍이 40년 전 방바닥 수련회의 감성을 살려내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게 되려면 공간의 재배치가 좀 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한 오십년 사이에 소달구지 끌던 것부터 시작해서 디지털화된 인공지능 자율주행까지 모두 경험하고 있고 그 시기 동안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줄기를 붙잡고 있다.
지금은 기독교와 예수님과 세계관을 붙잡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 세대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유가 있지만 딱 한 가지로 말하라면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복잡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복잡한 생각으로 인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과 관련지어 생각하며 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또한 우리 단체 안에서도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가 4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수련회 감성, 방바닥 모임의 감성이 있어서가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밥상 공동체를 통해 이끄셨고 제자들은 방바닥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은거지를 중심으로 모였다. 우리도 다락방의 감성을 살려내면 좋겠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행 1:13상).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