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신학을 공부하던 학부 시절 신국원 교수님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였다. 아마 그 계기가 아니었다면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꾼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보수적인 신앙 환경에서 자란 데다가 보수적인 신학교까지 갔으니 말이다. 인류학은 사회과학 안에서도 때로 무척 진보적인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인류학 석사과정에 지원하던 내게는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가 더 컸다. 그 이면에는 학부에서 배웠던 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반학문을 하는 ‘기독교 지성’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 호기심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 박사과정의 여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신국원 교수님을 비롯한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의 헌신과 사역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동역회’에 빚진 마음을 갖고 있는 또래들이 신학교와 목회 현장에 많이 있다. ‘동역회’의 유산은 복음주의 배경의 신학생 및 목회자의 안목을 넓혀주고 도전하게 한다. 앞으로도 ‘동역회’는 복음주의 배경의 교회와 신학교 안에서 이 역할을 하는 데에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학문을 하는 오늘날의 대학원생들에게 ‘동역회’의 유산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2018년 가을 인류학과 석사과정에 들어와 학위를 마치던 2021년 봄까지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을 모아 거의 매 학기 스터디그룹을 운영했다. 이공계, 자연계, 사회계, 인문계 등 거의 모든 대학원생들이 모임을 거쳐 갔다. 그 모임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내가 익히 들었고 또 내심 그렇게 되길 바랐던 80년대 ‘기독교학문연구회’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이를 만들고 주도했던 나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각 학문 분야들이 전문화를 거쳐 너무나 세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 대학원생’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자리임에도 서로의 연구 및 연구 고민을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같은 단과대 안에서도 분야가 다르면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웠다. 대학원생들은 대개 전문화된 학문 분야들을 따라잡기에도 벅찬 상황에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을 다른 전공 사람들과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각자 공부하는 내용을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이해하길 시도한다는 것은 나부터가 부자연스럽고 또 무모한 일처럼 느껴졌다.
2000년대에 한국에서 벌어진 기독교 세계관 논쟁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여러 한계 및 문제점을 논하였고, 그중에는 1980~90년대에 다져진 기독교 세계관의 사상적 토대가 각 학문의 ‘각론’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20년이 지난 2020년대에도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동안에도 학문의 세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세분화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기독교학문연구회’ 같은 성격의 스터디그룹이 결성되기 어려웠던 두 번째 이유는 오늘날 대학이라는 공간 및 지식인의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1980년대 한국 대학과는 다르게 오늘날 대학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사회에 대한 ‘기독교 지성’으로서의 책무나 공적인 양심에 대해 씨름하는 곳이 아니다. 지식인의 군상 역시 대중을 계몽하고 진리를 증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박사학위 취득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며, 일반대학의 교원 신규채용 중 약 절반이 ‘비정년 트랙 전임교수’다. 이 처절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원생은 나날이 전문화되어가는 세부 분야에서 일정량 이상의 논문을 생산해내는 테크니션 혹은 강의노동자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그리스도인 대학원생 스터디 모임을 학문 세계와 연결하기보다 단절시켰다. 스터디그룹은 대학과 차단되어 ‘숨통 트이는 곳’이 될 때 가장 큰 결속력을 가졌다. 우리의 모임은 자연스레 연구실 동료들 및 교수에게 받은 상처와 고충을 털어놓는 서바이벌리스트들의 성토장, 막막한 현실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 기도해주는 곳이 되었다. 무척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막연히 기대했던 나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당혹감과 아쉬움이 남았다. 이 이면에는 지난 40년간 급격하게 바뀐 한국 대학의 성격 및 지성인의 군상이 있다. 지성의 조건이 변화하고 그 기반 자체가 위태로운 현실에서 학문을 하는 오늘의 대학원생들에게 ‘기독교 지성’이란 숨 틔우는 우리들만의 아지트 외에 달리 무엇일 수 있을까?
나의 학문 여정을 가능케 한 ‘동역회’의 지난 40년 유산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복음주의 ‘기독교 지성’의 풀뿌리였던 1980년대 스터디그룹이 과연 2020년대에도 재생산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20년 넘은 문제의식인 위 첫 번째 이유 못지않게 두 번째 이유를 진지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장에서 목소리도 형체도 없이 위태롭게 존재하는 수많은 서바이벌 리스트들, 공공연히 작동하는 불평등, 차별, 소외, 역기능 등, 이는 ‘기독교 지성’을 넘어 학문의 장 모두를 아우르는 공적인 문제이다. 말하자면, 방 안의 코끼리를 몰아내는 데 다시 한번 ‘기독교 지성’의 공적인 양심과 책임 및 증언이 빛을 발해야 한다. 이로써 나와 같이 ‘동역회’에 빚진 마음을 지닌 대학원생들이 많이 나오기를, 그렇게 ‘기독교 지성’으로서 ‘동역회’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앞으로의 40년도 지속할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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