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23년, 일 년간 교수직을 휴직했다. 연구년도 질병 휴직도 아닌 일본으로 발령을 받은 아내의 요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내 요청 휴직’이랄까. 도쿄로 발령받은 아내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일 년 동안 함께하길 원했다. 방학이 되면 바로 일본에 가겠다고 했지만, 아내의 대답은 “No”. 조심스럽게 학교에 휴직 신청 이야기를 꺼냈다. 이러한 이유로 휴직 신청을 하면 당연히 반려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당일로 휴직 허가를 받았다. ‘히라가나’도 모르는 나의 일본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한일 간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일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일본이 좋다며 여행 다니고, 일본 사람들 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역사적, 정치적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일본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세계관이 변화된 것이다.
백석대학교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기독교 학문 활성화를 위한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유익 중의 하나는 바로 일관된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내가 늘 일관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세계관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다시 말해, 나의 입장, 내가 속한 공동체, 민족, 국가에 대한 생각들이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할 때 왜곡된 나의 세계관을 깨닫고 변화시켜가는 중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진정한 만남을 통해 형성된다. 성경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고,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로 사랑을 나누고, 좋은 책을 통해 저자와 소통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 형성된다. 일 년간 일본에 있으며 이런 만남을 가졌다. 일본 치바현 글로리아선교신학교에서 일본 복음화를 위해 기도로 섬기는 임진하 선교사를 만났다. 임 선교사의 요청으로 신학교에서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하면서 뜨겁게 찬양하며 기도하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말씀에 목말라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았다. 메이지가쿠인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서정민 교수를 만나 일본선교와 일본교회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본교회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쯔지 목사와 윤인중 선교사가 섬기는 동경산돌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헌신적인 성도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외 찬양 사역으로 섬기는 공민 선교사, CGN Japan의 박두진 국장 등을 만나며 일본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하며 섬기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해외로 선교를 가기만 했었는데,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온 선교팀을 만나 그들의 선교사역을 돕는 색다른 경험도 했다.
한국에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키르키즈스탄 등으로 단기선교를 몇 차례 다녀왔지만, 일본선교에 대한 나의 입장은 ‘다른 나라도 많은데 왜 일본선교를 해야 하는가’였다.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2013년부터 ‘동역회’ 일에 참여하며 기독교 세계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왜곡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 윌킨스와 마크 샌포드가 <은밀한 세계관>에서 언급했듯이, 삶과 문화에 녹아있는 은밀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갔던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흔히 세상을 보는 안경으로 비유하지만 나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안경이자 나의 모습을 보게 하는 거울이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나의 왜곡된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부끄럽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귀한 변화의 길로 인도하여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도쿄에 머물며 십여 차례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학에서 기독교 학문 활성화를 위한 부서의 일을 하며 신학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껴 신학대학원에 다녔는데, 일본에서 설교자로 세워주신 것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씀과 씨름하며 하나님께 질문하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설교를 준비하며 “설교자들이 말씀을 준비하며 받는 은혜가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일 년의 삶은 내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일본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일본 복음화를 위해 섬기는 사역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4월에 목사안수를 받고 동경산돌교회의 협력 목사로 섬기고 있다.
새로운 섬김의 자리도 주어졌다. 9월부터 보건복지대학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 일이 보건복지 분야에서 기독교 학문 활성화를 위해 부르신 자리라 생각한다. 올해 초부터 ‘동역회’의 실행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동역회 4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 섬겨오신 ‘동역회’의 한 분 한 분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기도하며 섬겨주신 분들의 수고가 있기에 ‘동역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40년,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왜곡된 세계관을 발견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역회’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우리의 세계관은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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