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받는 난감한 질문 중 하나는 “너는 모태신앙이야?”이다. 부모님 세대부터 신앙이 이어져 내려와 태어나서부터 교회를 나가고, 기도를 해봤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자란 것이 모태신앙이라면 나는 모태신앙이다. 하지만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말씀과 찬양으로 살아가며, 가족 구성원이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고, 주일성수는 기본으로 여기는 것이 모태신앙이라면 나는 아니었다. 물론 부모님이 계셨기에 교회에 자연스레 발을 들였고, 한동안 교회를 떠났다가도 결국엔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왔기 때문에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가정 안에서 말씀으로 살아가고, 말씀으로 이기고, 기도로 이기는 경험을 한 적은 거의 없이 가족 구성원이 모두 선데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다. 아직도 나의 꿈은 가족들과 모이면 당연하게 성경 이야기를 하고, 기도 제목을 나누고, 찬양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바라는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그저 발로만 교회를 다니던 대학원생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크게 세 번의 신앙 전환점이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나갔던 신앙의 1기,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한 신앙의 2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신앙의 3기다.
먼저 신앙의 2기는 2019년 신년을 맞이해 갑자기 성경 일독을 작정하고 연구실 사람들과 QT 모임을 시작한 해이다. 올빼미형 인간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2시간 먼저 출근하여 연구실의 믿음의 사람들과 4년 동안 매일 아침 QT 나눔을 하였다. 성경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은 마치 연애 초기에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기 같았다. 항상 기분 좋은 궁금함으로 넘쳤고, 매일매일 QT 나눔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오죽하면 QT 책에 있는 글은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전부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며 떠올려보니, 내 의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이때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 또 QT 모임에 나를 초청해준 믿음의 선배들 덕분에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말씀을 접하는 삶을 살아가며 처음엔 마냥 하루하루가 신나고 감사로 넘쳤지만, 어느 순간 나를 계속 무너뜨리는 상황들이 있었다. 목표로 했던 박사 졸업은 무한정 연기되는 와중에 연구실에 불이 나서 한동안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졸업에 쫓겨 연구를 즐기기보다는 '빨리빨리'라는 조급함으로 논문을 마무리하며, 연구자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말씀을 알아갈수록 내 삶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믿지 않는 자와는 멍에를 지지 말라고 하시는 주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시면서,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하시는 주님. 믿고 기도하고 구하면 다 이뤄주신다면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응답이라 하시고, 때로는 무한정 기다리게 하시는 주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말씀으로 사는 방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무지하고 경험이 없던 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2021년 1월 1일, 새해 다짐 기도를 하다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해 되기'를 올해 표어로 정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이때 나의 신앙의 3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때는 “나 이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해야지.”라고 다짐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이 시기에 삶의 많은 부분, 예를 들면 성경을 이해하는 것, 졸업을 준비하는 것,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가족 간의 갈등 등에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 말씀을 주시는 줄 알았다. 그렇게 2021년이 끝나갈 때쯤, 오랜 기간 교제 해오던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포함해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거의 눈앞에 보이던 졸업 역시 좌절되었다. 참 많이 울기도 했고,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나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시기이다.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지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가 응답받는 한 해였다. 그 후로 매년 새해 첫날이면 나는 ‘올해의 기도 제목’을 정한다.
올해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라는 말씀을 모티브로 하여, ‘포도나무 가지로 살아가기’가 나의 기도 제목이다. 박사 졸업 이후 연구에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포도나무이신 하나님께 꼭 붙어있으면 열매는 자동으로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1)라는 말씀을 통해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셨다. 이 말씀을 통해, 박사과정 때 해왔던 ‘반려견-사람’ 비교의학 연구와 유전체 분석 기술, 어릴 적부터 키워오던 동물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 등이 다음 같은 소명으로 이어졌다. 즉, “동물들의 각기 다른 다양한 능력들을 탐구하고, 멸종위기 동물들의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보존할 수 있게 도와주며,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특정 질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소명이었다. 아울러,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들의 경이로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올해가 지나가는 이 시점,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그래서 내년에 새로운 곳에서 첫발을 내 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에서도 물론 헤매고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겠지만, 부지 중에도 늘 응답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기에 어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이 길을 걸어보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기도를 이루어 가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1년 전의 나처럼 소명이 뭔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이 작은 나눔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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