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세기 최고의 세계관 대결
-맷 브라운 감독의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2024)-
C.S.루이스가 프로이트를 만난다면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 2024)은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와의 만남과 대화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1939년 9월 3일, C. S. 루이스(매튜 구드)는 프로이트(앤서니 홉킨스)의 초대를 받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당시 그가 살고 있던 런던의 집을 방문한다. 도착 전 거리에서 만난 프로이트의 딸 안나(리브 리사 프리에스)가 루이스에게 건투를 빌 정도이니 관객만 없었을 뿐이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벌이는 세기의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이 만남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그러나 만일 루이스가 프로이트를 만났다면 프로이트가 죽기 전 영국에서 살았던 1938년 6월과 그가 세상을 떠난 1939년 9월 26일 그 사이가 될 것이다. 다만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했던 프로이트의 일기에 따르면, 옥스퍼드의 젊은 교수 한 사람이 찾아왔다는 한 줄의 기록이 그나마 역사적 만남의 가능성을 여는 단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프로이트의 나이는 83세였고 루이스는 41세였다. 한 세대의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책과 명성을 통해 사전적 이해는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 <순례자의 귀향>(Pilgrim’s Regress, 1933)에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풍자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가운데는 지기스문트(Sigismund)가 있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본명이기도 하다. <순례자의 귀향>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루이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책을 한 권 주머니에 넣어 준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열어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준 책을 루이스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꺼내 보는데 바로 그가 쓴 <순례자의 귀향>이었다. 프로이트의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프로이트가 평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다소 경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까닭에, 그리스도인이었던 루이스를 대하고 또한 그의 책을 선물로 준비한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루이스의 기독교 신앙이 문학적이며 변증적으로 논술되는 일에 대해서 프로이트가 암묵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루이스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과 이성적인 변증 능력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프로이트로서는 루이스가 환자가 아닌 대화 상대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상상과 이에 따른 세계관의 충돌을 처음으로 저술한 사람은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아맨드 M. 니콜라이(Armand M. Nicholi Jr)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 2002. 같은 제목으로 홍성사에서 출간)에서, 이 책의 목적이 “완전히 대립하는 두 관점,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 프로이트는 이 세상의 인간을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니콜라이의 저술은 단순히 프로이트와 루이스 사이의 세계관 대립을 넘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두 부류의 인간에 대한 세계관적 이해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미국의 희곡 작가 마크 세인트(Mark St. Germain)가 2009년에 연극 무대에서 시연한 작품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번 무대 위에 올려졌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난점은 대중성에서 드러난다. 두 주인공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을 만큼 훌륭하다. 다만 과거 회상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장면들은 2인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극처럼 평면적인 까닭에 주인공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를 이해할 만한 배경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다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경우 이 놀라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방문한 사람은 불과 11,326명(10월 10일 현재) 불과하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해서 캐나다까지 합쳐서 입장 수익이 고작 906,283달러, 즉 1백만 달러조차도 넘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치는 두 번 볼 때 나타난다. 첫 번째 관람에서 우리는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 1995)에서 루이스 역을 맡았던 앤서니 홉킨스가 이번에는 그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프로이트를 연기할 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볼 때는 서로 다른 세계관의 입장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무신론 관객이든 그리스도인 신자이든 최고의 지성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다.
빅매치의 승자는 관객이다
문화가 세계관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루이스와 프로이트와의 만남을 상상하면서 흥미진진한 논쟁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두 사람은 무신론과 유신론이라는 서로 다른 대척점에 서 있는 세계관으로 무장한 채 20세기 서구 지성계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만남이란 마치 세계 헤비급 복싱계를 풍미했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결 같은 ‘빅매치’를 연상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유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서로 다른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신의 존재와 성, 죽음과 고통 등의 주제들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차분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영화만을 놓고 보자면 프로이트나 루이스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이와 전공, 세계관의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만났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냈다. 그러나 두 지성인의 이야기로 가득한 영화를 끝까지 보는 관객이 있다면 그 또한 대단한 사람이다. 루이스와 프로이트를 지켜보며 자신의 눈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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