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세계사의 어느 한순간도 국가/민족 간의 갈등과 분쟁이 그친 적이 없었다. 올해도 예외 없이 국가/민족 간의 참혹한 전쟁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이사야는 시온에 야훼의 보좌가 견고히 서는 날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전쟁을 그치고 모든 전쟁 무기들을 생산적인 농기구로 만드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사 2:4). 시온에 몰려든 열왕들과 열국 백성들이 야훼의 토라를 공부함으로써 전쟁 대신에 평화를 배우게 되고 야훼의 공평한 판단이 이뤄지는 시온은 세계평화의 발상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적인 전망이 실현되기까지 인류는 살육 전쟁의 위협 아래 노출되어 있다. 이 세계에는 개별적인 나라들의 전쟁행위를 심판하고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공평무사한 초국가적 상설 중앙정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고 만유를 다스릴 정권을 만유 위, 즉 하늘에 세우고(시 103:19-21), 나라들과 민족들의 동태를 감찰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압박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고 정의를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 나타나셔서 전쟁을 종결짓지는 않으신다. 구약성경은 다섯 가지 명제로 하나님의 전쟁원칙을 해명한다.
(1) 하나님은 파라오의 400년 압제로부터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해 출애굽 전쟁을 향도하셨고, 가나안 도시국가 서른 한 왕들을 패퇴시키고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허락하셨다(출 7-12장; 수 12장). (2) 이스라엘의 왕의 어떤 약탈 전쟁도 금지하셨다(신 2:8-19). (3) 아무리 의로운 전쟁이라도 전쟁 개시 전에 먼저 평화를 추구하게 하셨다(신 20:1-7). (4) 원수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일정 기간 간직하는 것은 허용하나(출 17장 아말렉), 종말에는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평화통치에 복속될 것을 증언하셨다(사 19:16-25). (5) 언젠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세계 만민에게 평화를 선사할 것을 예언하셨다(사 25장, 행 2장).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종말의 세계평화가 도래하기 전까지 도덕적 무정부하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국제분쟁을 단순히 선과 악의 갈등으로 손쉽게 분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 간 전쟁은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인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인가? 결코 아니다. 이 두 전쟁은 각각 길고 복잡하며 증오 어린 갈등의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전쟁당사자 중 강한 나라의 전쟁행위가 하나님의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약소국의 국민들에게 이 하나님의 엄정하고 공의로운 강대국 심판이 약소국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지만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해방적 신원은 너무나 먼 현실이다. 이 세계의 어떤 국제기구도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여 노략질당하는 약소국의 전쟁희생자들이나 난민을 돌봐주지 않는다. 그럼 지구에 일어나는 이 전쟁들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마가복음 13장은 지진, 기근, 홍수, 전쟁과 난리가 종말의 한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류가 이 지구를 지키고 누릴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기 고발적인 악행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화를 증거하는 화목의 직책을 주셨다(고후 5:17-21).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셨으며 자신의 육체를 찢어 이방인과 유대인의 적대적 벽을 허무셨다. 예수님은 로마 병사가 찌른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심으로써 그를 찌른 로마 병사를 구원하셨다. 그는 예수님의 보혈을 보고 예수님께 회개하고 돌아왔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보혈로 원수된 자들을 친구로 재창조하는 권능을 발출한다. 예수님의 보혈공로를 덧입은 그리스도인들은 파괴적인 지구민들의 전쟁을 종식하는 선한 싸움을 하도록 부름받았다(엡 6:12-18). 이 선한 싸움은 적의를 소멸하고 평화를 창조하는 싸움이다. 이 선한 싸움의 총사령관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하나님의 어린 양은 자신이 흘린 피로 싸우지 적의 피를 흘리는 칼로 싸우지 않는다. 어린 양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 순결한 삶을 살아냄으로 더러운 욕망을 섬기는 사람들을 이기는 싸움이다.
칸트는 이 기독교적 평화원리를 국제적 평화체제를 착상하는 데 적용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민주 공화정 국가로 변화된다면 평화 애호 시민들이 전쟁을 마음대로 벌이는 지도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로 정결케 된 평화 애호 시민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견제하는 평화의 감찰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 부인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 공화정 국가는 이웃 국가를 함부로 침략하며 전쟁을 벌일 수 없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로 정결케 된 평화 애호 시민들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러시아에 각각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들이 떼지어 나타나야 두 나라는 평화 애호 국가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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