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스라엘 곳곳으로 보내시고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귀신을 쫓는 능력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처음으로 한 해 동안 성경 전체를 꾸준히 읽어 내려갔던 고등학교 2학년 때, 통독하던 중에 발견하고 마음에 감동을 많이 받았던 말씀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21년 정도의 삶을 목회자 자녀로 가정의 신앙적 전통 아래 자라왔다. 주일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교회가 또 다른 집과 같았다. 어렸을 적부터 여러 성경 말씀이 귀에 익었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차에 탈 때나 약을 먹을 때와 같은 일상적인 순간들에도 부모님과 함께 기도했다. 지난 일들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기억하려는 분위기 속에 길러졌기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비교적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조금은 막연한 책임감 속에 살았다. 환경은 절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을지라도 다른 가족들, 거쳐 온 여러 교회의 성도님들, 학교 선생님들, 이웃분들에게까지 긍휼과 사랑을 받아 큰 결핍감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은 떠올릴 때마다 늘 감동되는 등대 같은 삶의 지침 중 하나다.
나는 나눌 것이 많다고 자신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에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까지 더해져서 학교 안팎에서 여러 봉사에도 참여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학업이나 학교생활에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언제든 편하게 바로 대답해 주는 모범생 친구의 자리에 있었다. 가지고 있던 용돈으로 가끔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대접하는 일도 좋아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니 입장이 많이 달라졌다. 대학은 나보다 훨씬 풍요롭고 학업적으로도 우수한 성과를 내는 친구들이 무수히 많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나누고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누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진정성 있었는지, 칭찬과 인정을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했던 것이 대학 생활 초입이었다.
내가 대학에서 처음 만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서울대 ‘수요열린예배’였다. 신앙적인 근거지였던 집과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는데, 학교 포털 사이트 공지를 보고 입학한 첫 주부터 예배에 참석했다. 첫인사로 학부 신입생이라는 말씀을 드렸을 때 많은 분께서 학부생이 찾아온 것은 수년간 해온 기도의 응답이라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렇게 사랑과 관심 속에서 얼마 되지 않아 찬양팀에 합류하였고, 싱어와 악기 담당은 물론 어느새 찬양팀 리더까지 매주 예배마다 역할을 바꾸어가며 맡게 되었다. 나는 세대와 직위를 막론하고 함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서 교회 생활 등 삶의 궤적을 따라 쌓인 작고 보잘것없는 경험을 가지고도 하나의 예배 자리를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이제는 어느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든 예배에 찾아오는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기도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요열린예배’에 나가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전공학과와 같은 건물의 옆 학과 교수님께서 메시지를 전하러 오셨다. 그 교수님은 우리 건물에 있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지도하고 계셨고 나도 그 모임에 초대받았다. 이 모임은 공학 분야에서 학업과 연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구하며 또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지체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내게는 전공학과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탄식하곤 했는데,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응답받은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으며 나누는 묵상·기도 모임과 공대 그리스도인 교수님들의 간증, 때로는 학교 밖으로 나가는 친교 등 학교생활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는 만남의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따뜻한 선배들, 모임을 든든히 지원해 주시는 어른들을 보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새롭게 ‘거저 받는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이 모임을 통해 캠퍼스 전체라는 보다 큰 단위에서의 그리스도인 연합체에서 많은 이들과 교류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만남과 경험은 내게 다시금 거저 주고자 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였고, 하나님께서 흠 많고 자격 없는 내게 이미 주신 것들, 구원에서 시작하여 은혜로 누리게 하신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도 되새겼다. 나는 다윗의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는 고백이, 우리 교회 표어처럼 “세상을 위해 보냄을 받은” 매일의 삶에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고자 할 때도 동일하게 올려지기를 바랐다.
2024년은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고민하게 된 한 해였다. 전년도에 무산되었던 학과 학생회 선거에 보궐로 출마하여 3월부터 11월까지 학생회장직도 수행하게 되었다. 나는 임기를 시작하면서는 학생회가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회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마음을 대하는 일이고, 크고 작은 마찰과 결정이 존재했다. 예상치 못했던 공과대학 학생회와 같은 상위 기구의 일들도 더해져 어깨가 무거워졌다. 절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아 여러 날을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마주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더라도 지금 할 일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임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동안 부끄럽지만 돌이켜야 할 모습들, 일이 많다는 핑계로 비교적 꾸준히 지켜오던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이 무너지기도 했고, 말과 생각으로 하는 불평과 불만도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것 같다.
어느덧 대학에 들어온 지 4년 차에 들어선다. 여전히 청지기의 사명을 잘 살아내지 못했던 모습들이 생각나고, 학생으로서의 평범한 일상을 잘 회복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이제 다시 “무엇을 줄 수 있지?”라는 고민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애쓰던 지난 9개월의 시간이 남긴 열망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모습처럼 ‘한 사람을 품는 사랑’이었다. 학교와 교회에는 주변에 늘 붙여주신 이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야기를 듣고 붙들어 주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받은 가장 귀한 것이자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 복음이 소망됨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사는 그 기쁨을 다시 주변으로 흘려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감당하고 있는 학업을 통해서도 사랑을 더 큰 세상으로 흘려보낼 날을 성실히 준비할 수 있기를, 날마다 기도하며 다짐해 본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5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