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고 선포하셨고 예루살렘에서 심문받으시면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 18:36)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교회는 이 세상 안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이 원리를 ‘두 왕국론’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와 교회라는 두 기관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이 둘은 서로 속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보완한다는 가르침이다. 차이가 있다면 루터는 국가를 견제하는데 소극적이었지만 칼뱅은 국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경우 불복종할 것을 명시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교회와 정치의 관계도 같은 구도에서 전개되었다. 구한말 영미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한국 교회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복음에 적대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했다. 그래서 두 왕국론을 근거로 교회와 정치를 분리하는 ‘정교분리’ 원칙을 세웠다. 국가로부터 선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로인해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입장이 공존하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일제에 항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신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영혼 구원과 복음전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한국 보수교회의 일반적 특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일제하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담당한 역할은 비기독교인들도 인정할 만큼 크고 위대했다. 선교사들과 달리 한국의 신자들은 교회를,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민주적인 국가를 세우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장로교의 승동교회와 감리교의 상동교회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신자들의 순교의 피가 한반도와 북간도를 적셨다. 서재필을 비롯하여 이상재, 이승훈, 이회영, 이동휘, 이동녕, 전덕기, 이승만, 김구, 안창호, 김규식, 조만식, 여운형 같은 이들에게 정치와 신앙은 분리될 수 없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던 상해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그 때문에 일제는 교회를 ‘민족주의자의 소굴’로 규정하고 1930년대 이후 신사참배와 전쟁보국의 명목으로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교회를 탄압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교회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았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국교는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과 동시에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그의 신념인 ‘기독교 건국론’에 따라 정부요직에 기독교 신자들을 대거 참여시키고 기독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명목상의 ‘비정치화’와 실질상의 ‘정치화’라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KNCC와 일부 진보적인 교회를 제외한 대다수 보수 교회들은 신자들에게 정교분리를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역대 반공주의 정부와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 문제는 이 정부들이 예외 없이 반민주적인 독재로 끝났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불법적인 개헌과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4·19혁명으로 몰락했다. 박정희는 19년이나 집권하면서 경제개발에 성공했지만, 유신헌법을 내세워 종신독재를 꿈꾸다 피살되었다. 시민들을 학살하고 제5공화국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한국교회는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 교회와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교분리 원칙도 일제라는 악마적인 정부 앞에서는 결코 그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 정부수립 이후 정교분리와 정치협력이라는 이중적 입장을 가졌던 보수교회는 정치적 우대와 교회 성장이라는 대가를 얻었지만,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 정권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한번 칼뱅이 제시한 정교분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 같다. 한 국가 안에서 교회와 정치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고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때 비판받고 시정되어야 한다. 정부가 헌법을 무시하고 종교와 인권을 억압하고 침략전쟁을 일으킬 때 교회는 정부에게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반대로 교회가 반사회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할 때 정부는 이를 중지시킬 의무가 있다. 이것이 교회와 정치의 바람직한 상호협조와 견제다.
신자들은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정치 이념도 하나님과 성경 아래 놓여야 한다. 특정 정당이 기독교와 가깝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교회의 좋은 의도조차 나쁜 권력에 이용당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극우주의와 극좌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대화와 타협보다는 선동과 폭력을 선호한다. 신자들이 이런 세력에 가담할 때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복음은 왜곡되어 버린다. 사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대통령이나 정당 대표가 정부나 정당을 독선적으로 지배하려는데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바로 서려면 이런 비민주적 행태를 신자들이 앞장서서 시민주도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 이때 교회에 앞서 요구되는 것은 교회지도자들과 신자들의 도덕적인 삶과 사회적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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