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로부터 두 달이 넘게 지난 지금, 경제 악화와 세계적 환경의 변화,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만든 국제 정세의 지각변동, 나빠진 의료 환경과 살인적인 독감. 이런 문제들은 정치 뉴스에 휘둘려 시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가 되었다. 정치는 이처럼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안이다. 정치를 무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랑에 실패한 자들이다.
대부분에게 비상계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국회에서의 대처가 가능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역주행을 막은 것은 지난 세월의 민주주의 학습 덕분이기도 하다. 군대가 시민을 죽이고 장갑차가 시내를 활보하던 때가 있었다. 국회에 모인 시민과 그들의 저항에 총칼로 대응하지 않은 군인은 모두 시민으로서의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혼란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지만, 준비된 사람들이 많으면 위기는 극복된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잘못된 번역어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주의’(ism)가 아니라 통치방식, 혹은 국가의 운영 방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데모크라시는 왕과 귀족 같은 신분 집단에 의해 통치되지 않고, 주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는 시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정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고 할 때 작동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혼자 지배자가 되려고 폭력을 사용할 때 정치는 소멸한다. 개인들의 합의된 의사가 공동의 삶의 원리가 되고, 사고방식과 생활 습속이 다른 사람들이 충돌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할 때 정치는 열린다. 다르다고 해서 없애고 처단하려고 할 때 정치는 닫힌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는 훼손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 몇 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개인의 생명과 인권 존중, 언론의 자유, 폭력의 배제, 절차의 수립 등. 이런 정신과 가치를 집대성한 것이 헌법이다. 국가는 헌법을 최고의 준거로 여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 기관이 미국에서는 대법원이고,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이다. 분쟁 해결의 최고 기관이 없으면 분열은 영구적으로 되고,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 근대 이후로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이즘’(ism)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서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를 설파하지 않는다. 성서에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왕정만을 언급하고, 심지어 신앙 자세를 왕정의 언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위계가 존중되고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고,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도 없다. 현존하는 정치체제를 그대로 인정하라고도 한다. 이런 언어와 생각 방식에 익숙한 신앙인이 민주정보다는 절대군주제를 더 친숙하게 느끼고, 심지어 독재나 전체주의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퇴행적이지는 않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은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광주에 가서 계엄을 옹호하는 집회를 열었다는 뉴스는 개신교인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흔들어놓을 만큼 참담한 사건이었다. 동료 교수는 아내가 이제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동안 말렸는데 이제 더는 못 말리겠다고 내게 말했다. 다른 동료 교수는 이보다 더 심한 말을 했다. 여기에 썼다가 지웠다. 이제 한국 교회는 민주주의의 적이 되었다.
한국 교회의 문제를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말로 표현하면 “한국 교회는 부패했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샌델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을 ‘부패’라고 했다. 돈 때문이건 권력 때문이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닌 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추구하고 있으면 그 교회는 부패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교회’라는 말을 단수로 쓰고 있다. 그 안에 그들도 있고 우리도 있다. 단수 명사 ‘한국 교회’라는 표현을 우리가 쓰는 한, 우리는 이 단어에 책임이 있다. 거기에 쓰여지는 영광과 오욕은 우리에게도 쓰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부패에 우리도 책임이 있다. 잠언은 우리가 지혜와 분별과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명철과 지식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지금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순간이며, 더욱 민주적으로 될 도약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발전의 발목을 잡던 세력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이 세력을 제대로 극복할 때 민주주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 교회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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