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작년 말에 시작된 또 한 번의 탄핵 정국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도 양극단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철저하게 이념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심지어 악마화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교인들 사이에 SNS를 통해 확산하는 정치 발언과 정보들에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교회가 정치로 오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른 신앙관을 갖는 데에도 큰 걸림이 되고 있다.
우리는 교회와 정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교회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토크빌(Tocqueville)은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교회들을 관찰하면서 매우 큰 인상을 받았다. 유럽의 교회들이 국가 교회 형태로 때로는 현실 정치와 결탁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킨 반면에, 미국의 교회들은 개교회 안에서 시민들의 민주주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초가 바로 교회와 기독교 정신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그가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의 요지이다.
한국 교회 역시 전래 초기부터 민주주의 학습장의 역할을 해왔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되었고, 자발적인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수평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인 토론이 뿌리내리기 전에도 교회 안에서는 부서들마다 토론을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신앙심에 기초한 애국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전국을 엮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조직이 교회밖에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국 역사에서 교회는 민주적인 조직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현재의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교회에서 말이 많은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고 덕스럽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교회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여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토론의 제1 덕목은 경청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상대방도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그렇게 하면서 서로 의견도 조정하고 자기 생각에 부족한 점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토론하기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얘기를 하고 주장하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른바 ‘구국의 일념’으로 거리에 나서고 있으며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익이나 좌익이나 스스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공공성은 헤게모니와 당파성 너머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공공성이 무엇인지 몰라서라기보다는 모든 인간 행위자들 스스로가 예외 없이 강력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보다 넓은 차원에서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는 초월의 이상과 경험 현실 사이에 적절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창조적 긴장’ 관계일 때에라야 종교가 현실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현실 세계에 동화되어 세속 가치에 매몰되어 버린다면, 종교의 본질인 초월의 이상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의 이상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한다면, 성경의 가르침 또는 기독교 정신에 다름 아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이라도 성경의 가르침과 그 정신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정치 이념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라고 해도 맹목적으로 지지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지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에서 개국 초기부터 교회가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해 온 것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치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지만, ‘믿는 바에 대한 도덕적 실천’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모든 국민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란 시민들의 참여, 대화와 토론, 그리고 협의 등과 같은 민주주의 과정 전체를 포함한다. 곧 공공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정치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긴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도덕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생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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