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난 해 12월 3일 계엄으로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 사회는 두 개로 쪼개졌고, 서로 상대방을 비난한다.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나라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이런 혼란이 생길까?” K-Pop, K-Drama와 같은 K시리즈가 세상 곳곳에 스며들고, 많은 국가가 한국을 경제·문화 선진국으로 여긴다. 전통적인 여러 기독교 국가는 선교와 신앙의 모범국가로 한국을 든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 근대 역사에 교육, 의료, 봉사 등 많은 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은 실로 컸다. 척박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많은 선교사님의 헌신과 노력으로 교회 공동체를 세웠고, 교회 공동체가 교육, 의료, 봉사의 중심이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길러진 많은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 기초가 되었다. 3·1 운동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인들,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과정 가운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와 근현대사의 아픔에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끼친 부분도 있다.
나는 학교에서 민법을 가르친다. 민법 교과서에는 ‘교회 분열’을 다룬다. 교회에서 갈등이 일어나 기존 교회에서 교인들이 나와서 새로운 교회를 세울 때, 기존 교회와 새로운 교회 사이의 재산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주제이다.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다루는 교회 분열의 사건은 아주 많다. 그래서 민법에서 교회 분열은 재산 관계를 다루는 전형적인 사례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 사회 일부 시민은 건강한 교회, 선동하는 교회, 이단 교회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그들만의 문제로 돌릴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겪는 분열과 갈등 상황을 좀 더 큰 시각으로 본다면, 이런 양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러 전쟁,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경제 양극화,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격차, 출산율 저하가 일어난다. 그런데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교육’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부모님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가정교육의 덕목을 가르치기를 바란다. 학교 선생님들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을 가정교육으로 여긴다. 어느 곳에서도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갈수록 경제 중심으로 치닫고,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얻는 쪽으로 나아간다.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해서 절망하기도 하고, 부와 명예를 얻어도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낀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과 사랑을 세상에 나누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셨다(마 20:28). 교회 공동체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섬김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ἐστε, 에스테)라고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말씀하신다(마 5:13-14).
세상이 혼란스럽다. 교회 공동체는 민주 사회의 기초로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에게 분별하는 지혜를 길러 주었으면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잠 9:10), 분별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로고스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세상의 상황을 말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갖게 했으면 한다. 구약의 하나님의 법(율법)이 신약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 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으면 한다. 법학을 공부하는 나는 하나님의 법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가르침(토라,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리시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법치주의’의 시작으로 여긴다. 법은 차가운 규범이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마 5-7장)에서 하나님의 법의 본연의 뜻을 설명하신다.
12월 3일 계엄으로 많은 시민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고 한다. 많은 시민이 법치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요사이 권력을 분산시키는 헌법 개정을 제안하는 의견이 많다. 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법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언약을 존중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하나님의 법의 완성이라고 힘주어 말한다(롬 13:10).
서구 근대 사회의 많은 법 제도는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의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해하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삶 속에서 나누며 섬겨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형제님들, 자매님들을 길러내야 한다. 나는 분별하는 지혜를 갖고 사랑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을 길러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여긴다. 분별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구원, 은혜, 사랑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눌 때, 우리는 근대 역사에서 이루어낸 교회 공동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고(행 11:26),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요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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