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2월 3일, 그날의 실체는 너무나도 명징했다. 야당의 폭거를 비판하던 대통령이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총기와 각종 교전장비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짓밟는 모습을 모든 국민이 지켜보았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갈등의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 무력으로 헌법기관인 국회를 점령하려는 반헌법적인 시도가,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많은 시민이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 앞을 지키며 군인들의 진입에 저항했고, 이후로도 수많은 이들이 헌정 회복을 위해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존립 기반이 위협받는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많은 교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불과 한달여 전, 10월 27일에, “동성애 악법에 맞서 나라를 지켜내자”라며 200만 성도들의 모임을 부르짖던 사람들이다. 교계의 위기에는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기도하자던 이들이, 공동체 전체의 위기에는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나라가 중국에 넘어가며 교회는 철저히 핍박받을 것이라는 목소리들이 보수 개신교의 인사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보수 개신교는 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론을 입에 올리는 반체제 극우세력의 숙주로서 급격히 몸집을 키우게 되었다. 도대체 ‘한국 교회’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한국 교회가 가진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돌이켜 보면 200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조직적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낸 경우는 대부분이 교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위협이 제기되던 상황에 국한되었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의 단군상 철거 운동부터 사학법 개정 반대, 종북 주사파 척결, 이슬람 반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그리고 코로나 시기 대면 예배 제한 반대까지, 거의 대부분이 교회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이슈들에 대한 즉자적인 반대로서 나타난 것들이다. 반면,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러 가지 사회적 참사와 정치경제적 변동 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비상식적인 발언으로 지탄받았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는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종교, 혹은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비뚤어진 공포심은 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데 대한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재 정권 시기 ‘유사 크리스탠덤’을 구축하며 천만 교세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자랑하던 한국 교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도전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그러한 도전에 정직하게 직면하며 성찰과 개혁에 나서기보다는, 외부의 적들을 때리는 데만 급급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 세속주의, 종북주사파, 네오맑시즘의 흐름’ 등에 맞서서 교회의 바운더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만 매몰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 앞에서 두려움에 압도되어, 세상을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 대 교회를 지키는 우리'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혀 버린 한국 교회는, 각종 음모론의 인큐베이터가 되었고, 정치적 분열의 최전선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를 좀 더 되감아 보면, 한국의 개신교는 수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희망을 노래했던 종교였다. 구한말의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교육과 구제에 힘쓰며 민중들을 일깨웠고,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이면에서 고통받는 노동자와 빈민들을 돌아보았고, 공의와 사랑을 부르짖는 기독교의 정신에 입각하여 시민운동의 초석을 닦았다. 이렇게 역사의 고비마다 신앙의 선배들은 시대적 사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우리만의 목소리로 시대의 불의를 고발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 왔다. 그러한 빛나는 믿음의 유산을 받은 한국 교회는, 어쩌다가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기에 급급한 이익집단으로 쪼그라들어 버렸는가?
사도 요한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선포하였다(요일 4:18). 두려움으로 쌓아올린 성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힘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믿는다. 끊임없이 적대자들의 전선을 확장하며 스스로를 지키기에 급급했던 수세적인 자세를 벗어나,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낯선 타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끌어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그렇게, 어두운 시대 속에 다시 한번 빛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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