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처한 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비상계엄 자체나 탄핵과 내란에 대한 법적, 정치적 판단에 머물지 말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치열한 여정을 통해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 또 앞으로 꿈꿔야 할 민주주의의 모습은 무엇일지를 토론해야 할 때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그 여정에서 보여준 영욕 역시 철저한 성찰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앙과 삶>(3+4월호)의 ‘사람사이’(인터뷰)는 신앙인으로서 42년째 일선에서 한국 사회를 관찰, 분석, 평가하며 대중의 존경을 받고 있는 언론인 변상욱 대기자를 만나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어 : 박진규(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일시 : 2025년 1월 20일(월) 오후 4시
장소 : 서울여대 인문사회관 909호
박진규: 변기자님께서는 1993년부터 재직하신 CBS에서 2019년 정년퇴직 후, YTN과 TBS에서 앵커로도 활약하셨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변상욱: 유튜브와 라디오에서 미디어, 정치, 시사 비평을 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강연도 많습니다. 42년째 준 현역에 가까운 셈이죠. 또, <한국기독교언론포럼> 공동대표이고, NCCK 미디어 위원회 전문위원 등 교회와 저널리즘을 연결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저널리즘은 제 삶의 두 기둥이죠. 이건 결국 사회와 교회를 연결하는 작업이어서, 사회과학적 연구자로서 강연과 글도 쓰고 있습니다.
박진규: 오늘 그 연구자로서의 혜안을 듣고자 합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염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변상욱: 결론부터 말하면 위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도약할 기회를 놓친 상황이지요.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났거나 되돌아가면 위기인데 어느 정도의 반동, 역행, 퇴행은 있지만 길에서 벗어나진 않은 거죠. 이번에 국회가 해산되고 권력 체제 자체가 무너졌다면 위기였는데, 지금은 헌법에 따라 계엄령이 해소되고 대통령한테 책임을 묻는 작업 중입니다. 잠깐의 퇴행이나 반동이지 위기는 아닌 거죠.
박진규: 그렇다면 비상계엄 이전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평가하시는 거네요.
변상욱: 그렇죠. 통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 이후 공백기와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고, 이후 문민정부로 가는 과도기인 노태우, 김영삼 정부가 있었는데 그다음에 반동과 갈등이 뒤섞이는 시대가 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혁파와 혁신을 부르짖는 과정에서 보수의 상처가 크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다시 안정과 번영 쪽으로 틀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탄핵을 당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어젠다를 갖고 막 달려가야 할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적폐 청산 과정에서 나라를 뺏긴 듯한 보수 우익 쪽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우파적 국가 개조론을 들고 나옵니다. 결국 혁파와 혁신의 시대, 안정과 번영의 시대, 다시 적폐 청산의 시대, 다시 우파 국가 개조론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정치 사회적 관점에서는 좀 다른 문제입니다. 시대정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국민 다수가 2~30년 동안 쭉 합의한 사안, 예를 들면 민주화가 있죠. 다수 국민이 지지한 민주화였는데, 이젠 형식적 민주화나 절차적 민주화는 끝났단 말이에요. 그 다음은 선진화로 가야 하는데 뚝 끊겨버린 거죠. 진보 진영이 부르짖은 혁파와 적폐 청산에 밀리던 보수 진영이 끄집어낸 아젠다는 미래 지향적이거나 비전에 의한 게 아니라 자기들 위기에 맞대응하는, 좀 퇴행적인 것들이 많았어요. 이게 안타까운 거죠.
사실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 교류가 원활해지고 진보 진영에서 화해와 평화 통일 선언문이 나오니까, 반공 이념을 토대로 하던 보수 진영에서 세 집결을 위해 한기총을 내세우죠. 게다가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일을 겪으니까 더욱 격해지면서 차별과 혐오 이런 것들로 빠집니다. 뭔가를 적대적으로 놓고 세를 결집해 위기를 탈출하려는 겁니다. 이슬람과 난민 문제, 성소수자 문제, 언제나 잘 먹히는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문제, 이런 것들을 한국교회의 맨 앞 의제로 계속 밀고 있는 거죠.
AI 시대의 종교, 경제적 양극화 시대 빈곤의 문제, 젊은 세대에게 어떤 길을 열어줄지, 또 기후 위기까지 수많은 의제가 있는데, 계속 성소수자, 이슬람, 남북 이데올로기 대결로 몰고 가면서 민주주의 자체가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서는 보수 기독교 세력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가 극우 기독교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데, 그걸 보수 기독교가 확실하게 단절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보수 기독교 진영이 우경화하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완성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와 관련한 민주주의의 퇴행이 드러난 거죠.
박진규: 보통 지금을 “87 체제”라고 하는데,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를 일컫잖아요. 그 성취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일정 역할도 있지 않았습니까?
변상욱: 사실 조선조에서 식민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정말 절호의 찬스였어요. 기독교를 전파해 준 것, 근대 문물을 처음 전해준 것, 일본 식민지 해방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 모두 미국입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상당한 경외심을 갖고 있던 거죠. 그 흐름 속에 다 기독교가 있거든요.
지배이념으로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들어왔는데 기독교가 통로가 됐으니 절호의 찬스들이 있었는데 못 했어요. 교권이 반성해야 해요. 교권이 자꾸 밀실에서 정치권력을 만난단 말이죠. 결국 지배 세력을 향해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그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교회를 지키자는 게 대세였어요. 시대 정신이나 친일 문제에 더 엄격했더라면 한국교회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이후에도 교회는 엘리트 위주, 자본가 위주로 세상을 돌리려는 권위주의 정부의 일본 친화적인 정책, 산업화 정책, 재벌 위주의 드라이브와 수출 위주 경제와 이해관계에 맞는 거예요. 교권은 역시 현실 정치권력하고 유착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70년대 초로 넘어가면서 유신 반대를 세게 하던 가톨릭이 박정희 정부로부터 내침을 당하자, 이때 개신교가 1973~4년부터 개신교 민주화 운동을 시작합니다. 80년대는 아예 종로 기독교 회관에 국민운동 본부가 세워질 정도로 개신교가 주축을 이루는 거죠.
박진규: 그건 아까 말씀하신 교계 권력과는 다른 측면이겠지요?
변상욱: NCC 가맹 교단 일부가 민주화 운동을 떠맡고 나섰어요. 한쪽에서는 NCC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었고, 나머지 보수 교회들은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그리고 북한 동포 돕기 세 가지를 내세웁니다. 보수 교회들도 누구나 공감하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주제를 잡아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진보와 보수의 성격에 따른 정책적 대결이 사라져 버렸어요.
이후 보수 기독교 진영은 계속 실패를 거듭했죠.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밀어줄 때마다 탈이 났으니까. 보수 기독교 진영이 밀었던 대통령을 다 잃게 된 거잖아요. 여기서 사람들은 저 집단은 도대체 뭐 하는 집단인가를 묻게 됩니다. 시대 정신과 국민적 합의의 흐름 속에서 항상 헛다리만 짚는 한국 개신교는 국민의 지탄을 받는단 말이죠.
박진규: 지금은 정책적 어젠다로 경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상실한 것인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변상욱: 한국에서 정치는 항상 사회 속에서 도덕률을 구현하는 도구적 행위였어요. 그래서 정파로 양분되기 쉬운 거죠. 둘 중 하나는 틀리고 둘 중 하나는 옳은 거예요, 도덕의 문제고 교리의 문제니까.
박진규: 진보, 보수 양쪽 다 마찬가지네요.
변상욱: 그게 우리의 정치적 DNA인 것 같아요. 교회나 정치나 분열이 많고 적대적인 게. 서로 대화가 안 되고 도대체 연합이 안 되잖아요. 그게 또 동전의 양면이어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잘못되고 어긋난 거는 못 참는 거죠. 원리와 원칙, 하늘의 큰 뜻에 어긋나는 건 군주도 인정할 수 없다고 DNA 속에서 외치니까요. 유교의 기본은 하늘의 성실함이에요. 하늘이 세상과 백성을 보살피는 데 조금도 소홀함과 게으름이 없다고 믿는 거죠. 하늘이 그럴진대 위정자가 이걸 배신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기독교의 기본 틀도 똑같아요. 하나님의 구속사가 진행되는데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되죠. 하나님이 얼마나 성실하시냐 하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할 정도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파하시면서 세상을 끌고 가시는 거예요.
박진규: 그런 유교적 DNA, 유교적인 상상력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좁은 교리적 의미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의 사고와 감수성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이를 너무 좁게 교리적으로만 접근하고 선교, 전도의 도구로만 삼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변상욱: 맨 처음 기독교가 전래했을 때, 천주라는 개념에 익숙했던 조선의 지식인들 생각에 비춰보면 기독교 사상은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근데 선교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미개한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복음주의자를 만들까에만 몰두했어요. 자잘한 도덕과 한국만의 토착화된 민속이든 무속이든 문화, 이런 것들에만 신경을 쓴 거죠. 젊은 선교사들이 역사와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죠.
박진규: 말씀을 들으면서 한국의 역사 전개 속에서 개신교의 잠재력이 너무 좁게 규정된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만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전망해볼 수 있겠네요.
변상욱: 한국인의 DNA 속에 자리 잡은 유교적 전통과 개신교 신앙이 매칭만 잘 되면 사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더 큰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죠. 그런데 한국교회는 식민 지배를 어떻게 무사히 벗어날까만 고민하다가 그 기회를 놓쳤고, 또 군부를 동원한 정권에 늘 머리를 조아리면서 친 권력,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예언자적 사명을 상실하게 된 거죠. 다수 대중과 함께 호흡했다면 괜찮은데, 너무 교회 키우기에 열중하다 보니까 대형 교회와 자본 때문에 국민에게 또 밉보이기 시작어요.
그렇게 코너에 몰리면서 25% 정도 비중이라면 우리도 아예 정치 권력화하자면서 기독교 정당 운동이 시작되는 거죠. 그때 행동대장이 장경동이나 전광훈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면서 25% 기독교인의 효용성이 발휘되어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결국 돈과 성공 위주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대형 교회들의 성공주의와도 맞아떨어지면서 한국교회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그 와중에 행동대장으로 나섰던 기독교의 극우 세력들은 세를 확보한 거죠. 그전까지는 ‘기독교 극우’라는 단어가 없었는데 기독교 보수가 다시 극우와 보수로 나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에서는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토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거죠.
박진규: 교회에서 토론과 질문이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변상욱: 목사가 교리를 전파하면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개교회는 노회한테, 노회는 총회한테, 교권에 저항하지 못하고 반발하지 못하는 상황이죠. 비판적 의식과 토의가 사라지는 비지성적인 문화가 교회를 뒤덮게 되었어요. 소아적인 세계관에 딱 묶여 있다고 봐야겠죠.
박진규: 아까 말씀하신 민주화 과정에서 개신교가 했던 역할이 있었고 당시의 기독교 지형이 있었다면, 지금의 최저점을 찍고 나서 다시 만들어야 할 지형을 위해 할 일은 무엇일까요?
변상욱: 일단 진보든 보수든 정치에서는 손을 뗐으면 좋겠어요. 정당은 이미 국민 전체를 위한 올바른 정책의 수립과 헌신을 통해 민주주의를 꾸려가는 집단이 아니에요. 정파적 목적을 위해 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이념에 따라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제도를 연구하는 성격을 갖는데 그건 교회가 할 일이 아니거든요. 지금은 너무 유착되어 있습니다.
새로 등장하는 세대들은 정파가 아니라 이슈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이번엔 개헌과 탄핵이었다면 다음엔 일자리와 주거 문제, 계급의 문제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 기후와 환경과학 등 미래의 문제가 쏟아져 나올 겁니다. 교회는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준비해야 하는 거죠.
다음에는 파워 시프트, 즉 힘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에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군부 무력에서 돈으로 갔다가 지금은 정파로 갔어요. 국민이 양분되어 자기 정파를 밀면서 싸우니까 힘을 얻은 거죠. 이제는 다시 시민한테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뭘 할 건가를 연구해야 하는데, 군사력 돈의 힘, 엘리트 정치의 힘, 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의 거리가 멀잖아요. 교회는 이 사람들한테 가야 합니다. 그게 살길이에요. 그들한테마저 버림받으면 교회는 진짜 힘과 돈과 정치에 그냥 종노릇밖에 할 게 없어요. 당장 눈앞 달콤한 것만 생각하다가 민중적 지지 기반이 없으면 교회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또, 시대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려면 사회과학적 공부가 필요한데 이 부분이 너무 약해요. 역사의 흐름을 못 읽고 외면하다가 나중에 크게 질타받는 일이 더 반복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지역과 개교회에 더 섬세한 정책들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의 개교회들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는 교권을 잡은 사람들이 결국 또 정치권력하고 돈 있는 사람들한테 매달리거든요. 그러니까 큰 흐름에서 보면 지금 지역과 작은 개교회들을 살리는 건 필수 과제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지역 자체를 살리는 데에 교회가 뛰어드는 문제, 그래서 지역과 지역 교회를 같이 살리는 문제에는 소홀합니다.
그래서 지금 시급한 거는 트랙을 다시 잡는 거예요. 복음 전파와 구제 이런 순수 복음 쪽 트랙과 동시에 사회 참여 쪽 트랙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YMCA든, 기윤실이든 또는 기독교 환경 운동이든 사회 운동의 가교 역할을 할 집단들이 다시 조직을 갖춰야 합니다. 결국 복음 전파와 구제, 이건 얼마든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늘 해왔던 일인데, 환경이든 사회 정의 문제는 경험을 쌓은 기독교 기구들이 있어야 하는 거죠. 투 트랙을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진규: 네, 오늘 대기자님께서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한국 사회와 교회의 역사와 현재, 미래까지 말씀해 주셔서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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