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어려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다.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간증을 들으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게 되었고 신앙도 생기게 되었다. 당시는 너무 어렸기에 구원에 대한 확신보다는 하나님의 살아계심만 겨우 인정하는 정도였다. 구원과 복음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는 알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건이 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신앙생활도 학창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던 어느 날, 내 안에 죄성을 처절하게 인식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을 처절히 깨닫는 날이었다. 그 날 문득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라는 말씀이었다. 그날 나는 복음이 주는 자유함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내가 지은 죄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고 오직 십자가만 붙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고 즐거웠다. 그날 비로소 나의 신앙은 진정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나는 항공우주공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박사가 되리라 생각을 했었고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박사가 되리라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고 그렇기에 진로에 대해서 큰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개 학부 4학년이 되면 자신이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고민하면서 각각의 길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따져보고 선택을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다. 그렇기에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을 크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된다면 삶은 순탄하게 흘러가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매우 순진하게도 말이다.
대학원 생활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나는 학부에서 신소재를 전공했지만 기계공학 과목들을 좋아하여 신소재공학과 연구실 내에서 기계 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실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연구실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기계항공공학부 내에서 신소재 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실에 석박사통합과정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소재 개발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연구실 내에 이런 업무를 수행해본 선배는 아무도 없었기에 누구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다. 이런 좌절 속에서 과연 박사과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그럼에도 물러설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연구를 해냈고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한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대학원 생활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실험 결과는 늘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고 논문은 계속 거절되었고 남들은 저만치 앞에 가 있는데 홀로 뒤쳐지는 기분이었다. 반복된 좌절을 겪게 되니 삶에 소망이 없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QT 말씀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당시 말씀은 마가복음 5장의 말씀이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딸을 고치기 위해 회당장의 집에 도착했으나 사람들이 딸이 죽었다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놀라웠다.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5:39)라고 하시며 “달리다굼” 하며 아이를 깨우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비록 삶의 소망이 죽어버려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잠들어 죽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붙들 때 그리고 예수님이 찾아오실 때 죽은 것만 같아 보였던 소망은 살아날 것이라고.
그 말씀을 묵상하던 중 아기코끼리 예화가 생각이 났다. 코끼리는 몸집이 육중하고 힘이 세 기때문에, 큰 코끼리를 사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사육사들은 코끼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비결은 바로 코끼리를 아기 때부터 사육하는 것이다. 다리에 쇠사슬을 채워 말뚝에 묶어 두면 아기코끼리는 말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아기코끼리는 번번이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반복된 실패 속에 코끼리는 자신이 그 말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코끼리가 다 큰 후 충분히 쇠사슬을 끊고 벗어날 수 있음에도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혀 쇠사슬에 묶인 채 사육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 예화에서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첫 번째는 과거의 수많은 실패가 현재의 실패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과거 실패의 기억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는 성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비록 내가 현재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앞으로의 실패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실패자로 살게 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좌절을 겪었더라도 다시 심기일전하여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해 본다. 고린도후서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비록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지라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다고 말이다. 더는 과거에 넘어져 좌절하던 내가 없고 앞으로 승리를 누릴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힘든 대학원 생활이지만 다시 한번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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