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잘 알려진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이다. 여우가 어느 동네에 사는 두루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하지만 접시에 담은 음식을 두루미는 먹을 수 없었다. 부리로 접시를 쪼다가 힘이 빠진 두루미는 분을 삼키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저녁 식사에 초청했다. 두루미는 호리병 속에 음식을 담아 상을 차렸다. 주둥이가 뭉툭한 여우는 음식을 맛볼 수가 없었다. 음식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여우는 자기가 한 짓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이 이야기는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 정치에서 그런 배려나 존중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현실 정치의 대립과 갈등의 여파는 국민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 때문에 일상의 삶은 정지되고 혼란스럽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걱정스러워한다. 그동안 우리 현대사에 중대한 고비가 있었지만 이만한 혼돈을 경험해본 적이 또 있었을까. 필자는 민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권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를 예술가들의 ‘공감’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페르시아인들>(Persians)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주제로 한, 승전국이 아닌 패전국 입장에서 본 비극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인들의 승리가 아닌 전사한 페르시아 군인들의 유가족, 특히 아내들에게 주목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들을 익명의 적국의 여성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감정을 지닌 평범한 여인들로 해석하는 접근법을 폈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적국 국민의 개인적인 슬픔을 함께 느끼고 동참할 수 있었다. 비록 나라와 문화는 다르지만,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클레어 패티의 '내 신발을 신고 1마일만 걸어 봐'에 참여한 참가자들)
두 번째 장면은 클레어 패티(Clare Patey)의 <내 신발을 신고 1마일만 걸어봐>(2018)라는 퍼포먼스이다. 작가는 런던 도심에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마련하였다. 클레어 패티는 사전에 각 방면의 사람들의 사연들을 인터뷰하여 참여자에게 들려주었다. 참여자는 간이 미술관에서 헤드폰을 빌려 쓰고 사전에 인터뷰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신발의 주인공은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수영이 유일한 낙이라는 사람, 교도소에서 예술가가 된 화물 운전사 등. 참여자는 걷는 동안 신발의 주인과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일체감이 들었다고 한다. 클레어 패티는 2021년 브릭스턴 폭동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솜전투 퍼포먼스 퍼포머의 카드에는 참전 용사의 이름, 나이, 소속,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장면으로 ‘터너상 수상자’ 제러미 델러(Jeremy Deller)의 거리 퍼포먼스를 들고 싶다. 제러미 델러는 솜 전투 백주 년이 되던 해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이동 추모관>을 연출했다. 솜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였다. 군인 복장을 한 1,500명의 퍼포머들은 거리에서 만난 행인들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고 간혹 그들과 접촉할 때 ‘작은 묘비’로 불리는 ‘흰 카드’를 건넸다. 그 카드에는 전투 첫날 사망한 군인의 이름, 계급, 소속 부대가 표시되어 있었다. “군인이 준 카드를 살펴보니 그날 사망한 군인은 내 또래였다. 그들이 지나는 가는 것을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참여자의 소감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영국의 깊은 정치적, 사회적 분열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시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는 ‘공감’에 기초를 둘 때 지금과는 다른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비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도움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 완수의 일환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해롭게 하는 모든 구조에 도전해야 한다. ‘공감’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낯선 이해방법이지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창의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타자에게 공감할수록 ‘샬롬’과 양립할 수 없는 사회생활의 구조조차 ‘창조적으로 전복’(creatively subverted)시키는 힘이 증대하고,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획기적 구상’을 실현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는 정치적 삶에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모든 긴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도전은 ‘현실’과 ‘가능성’의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견디며 행동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참담한 ‘현실’에 너무 기울면 평화를 위해 힘쓰기보다 전쟁을 대비하며, 뜬구름잡기식 ‘가능성’ 쪽에 너무 기울어지면 이상주의에 빠져 환상의 세계를 헤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머는 이 ‘비극적 간극’ 속에서 행동하려면 효율성을 성패의 척도로 삼기보다 다음 물음들을 척도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본성의 선한 천사들을 불러내는 것에 충실한가?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말하고 듣는 것에 충실한가? 공공선을 증언하라는 부름에 충실한가? 정의를 실현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사랑스러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에 충실한가? 국가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빠진 시점에,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현실에 어울리는, 만물의 갱신에 대한 비전을 실현해가는 ‘창조적 전복’을 마음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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