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와 극우 정치의 결합에 대한 한 저널리스트의 취재기
<나라 권력 영광> / 팀 앨버타 / 비야토르 / 2024
이 책은 미국에서의 정치적 극우와 복음주의의 유착을 파헤친다. 성공한 저널리스트이자 교회에서 나고 자란 목회자 자녀인 저자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미국 전역의 교회, 기독교 대학, 선거운동 등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취재한 이야기들을 엮어내었다.
1부는 ‘미국’이 어떻게 복음주의자들의 우상이 되었는지 추적한다. 이야기는 공화당을 지지하지 않는 지역교회 목사들이 트럼프 지지 교인들에게 배교자로 찍히거나 강한 저항을 받는 일화들에서 출발한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일까? 장면은 1950년대 라디오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지역교회 목사였던 제리 팔웰(Jerry Falwell)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던 70년대에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운동이라는 국가 구원의 기획을 통해 민주당의 ‘세속주의적 정책’을 적으로 상정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 범보수 정치 세력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성공은 다음과 같은 기본적 담론 틀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다.” - “미국은 위태로우며 기독교는 박해받고 있다.” - “이대로라면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 “(공화당에 어떠한 도덕적 결함과 문제가 있더라도)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화당을 무조건 지지해야만 한다.” 그렇게 공화당과 기독교 민족주의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2부는 선거 유세현장 및 여러 정치집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현장들은 정치적 극단주의가 미국 복음주의에 스며드는 양상을 보여주며, 정치적 승리 및 권력 쟁취가 궁극적 목적이 된 기독교의 모순을 드러낸다. 공화당 선거운동 현장에서는 정치연설과 성경 메시지와 찬송가 합창이 뒤얽힌다. 선거 유세 장소는 주의회 의사당과 대형교회를 갈마든다. 이제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트럼프 지지, 공화당, 우파, 낙태 반대, 동성애 혐오’와 같은 의미이다. 그 반대에 해당하는 낙태, 동성애, 트렌스젠더, 이민자와 같은 이슈는 반기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멸절시켜야 할 정치적 의제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불사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후보자를 지지해서라도 말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기독교적 가치를 포기하는 모양새라고 말한다.(131면). 이 역설이 만들어낸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인 인물들이 현실정치에서 득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옷을 입은 정치의 현장에서는 더 극단적일수록 더 쉽게 주류 ‘정치-종교’ 무대에 들어설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앙에서 벗어난 행위가 아니라 신앙을 증명하는 행위”(197면)가 된다.
3부는 기독교의 진정한 영광은 권력과 지배와 승리가 아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달려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며 희망을 모색한다. 폭발적으로 교회를 성장시켰던 한 담임목사. 그는 미국을 이스라엘이 아닌 바빌론에 비유하여 설교한 이후 1,500명 이상의 교인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가 신앙을 저버렸다고 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예수와 가깝게 지낸다.(15장). 공화당 및 기독교 민족주의에 반하는 언행으로 괴롭힘과 고통을 당했던 세 명의 신학자, 기업가, 변호사.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비당파적으로’ 원수 사랑, 겸손, 자비를 통해 문화에 참여할 수 있을지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만들었다.(18장). 남침례교 강경보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적적으로 교단 총회장에 당선된 한 목사. 그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교단에 침투한 것을 두고 “꼬리가 개를 흔들게 놔두는 것”이라고 했다.(19장).
성범죄에 연루된 교회를 고발하고 피해자를 법률적으로 돕는 한 여성 활동가. 그녀는 구조적으로 신학이 악용되고 있다며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정체성을 잃으면 권력을 갈망하기 쉽고 권력을 손에 넣는 데 필요한 도덕적 타협을 정당화하기 쉽다.”(20장).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빌미로 돈, 성장, 권력, 보수적 이념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설립자 일가에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한 기독교 대학. 대학에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한 교수는 “우리는 항상 전쟁 중이며 반격해야 한다.”라는 식의 문화 전쟁 프레임이 근원적인 문제라며 기독교 세계관을 재구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은 ‘문화를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제자의 삶을 살며, 제자를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둘 사이에 있는 미묘한 간극을 극대화하면서, 이 둘이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5년 포스트 계엄의 대한민국에서 이 책을 읽으며 미국과 한국의 ‘정치-종교’ 상황을 일일이 대응시키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서의 과정은 그 유혹에 저항하다가도 이내 유혹에 속절없이 빠져들기를 무한 반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한국 범보수 세력이 미국과 같이 기독교 민족주의에 의해 대거 결집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만 한반도의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기보다 그 아픔이 낳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국가와 체제를 우상화고 돈벌이를 하는 ‘정치-종교’ 꾼들이 득세한다는 점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욕설, 거짓, 불법, 심지어 폭력까지도 불사하는 당파성이 ‘기독교의 얼굴’이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가 관찰한 미국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위기는 실제적, 유비적 차원에서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 모두 교차하며 무수한 질문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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